Environment

핏빛으로 물든 알프스를 분석해 밝혀낸 흥미로운 사실

과학자들은 미세조류와 기후위기의 관계를 밝히려고 ‘핏빛 설원’을 분석했다.
알프스 핏빛 설원 분석 미세조류 기후위기
핏빛 설원. 사진: © Jean-Gabriel/ VALAY/ JARDIN DU LAUTARET/UGA/CNR

핏빛으로 붉게 물든 설원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이런 현상을 ‘핏빛 설원’이라고 부른다. 공포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 같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실제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건 사람이나 동물의 피 때문이 아니다. 눈 위에 퍼진 미세조류 때문이다.

미세조류는 지구상에 널리 퍼져있는 생명체다. 수천 종이 있고 색깔과 형태도 다 다르다. 보통 산호나 식물 잎의 표면에 붙어 자란다.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고산지대 설원에 서식한다고 놀라운 건 아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더해지면 이야기가 다르다. 기후위기로 미세조류의 서식지인 생태계가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유럽의 과학자들은 고산지대에 사는 미세조류를 연구하기 위해 알팔가 연구팀을 꾸렸다. 연구팀이 지난 7일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플랜트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세조류는 먹이사슬 하단 일차생산자이자 기후변화를 감지하는 지표다. 알팔가를 이끄는 에릭 마레샬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대학 연구원은 VICE와 인터뷰에서 “생태계가 매우 위기”라며 “100년 단위가 아닌 10년 단위로 소멸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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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조류 증가는 생명력의 신호이니까 어쩌면 생태계가 사라진다는 의견과 배치된다. 이들이 여러 색깔로 물드는 현상은 요즘 전 세계 설원에서 흔히 나타난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부터 히말라야산맥, 그린란드의 빙판에서도 보인다.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자외선과 강한 햇빛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미세조류는 보통 녹색을 띠는데 자외선과 강한 햇빛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방어막 구실을 하는 붉은색 카로티노이드를 내뿜으면서 색깔이 변한 것이다. ‘핏빛 설원’은 고산지대에서 미세조류가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붉은 색소는 주변의 하얀 눈을 어둡게 만든다. 그래서 기존보다 빛의 반사율을 낮춘다. 그렇게 되면 눈이 더 빨리 녹아 미세조류의 증식에 필요한 물의 공급량을 늘린다. 결과적으로 미세조류가 눈이 녹는 속도를 높여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원인이 된다. 바다에서 오염물질에 의한 부영영화가 미세조류 증식을 유발하듯이 바람 등을 통해 산꼭대기로 옮겨진 대기오염 물질이 알프스의 미세조류 증식을 촉발하기도 한다.

지구온난화와 대기오염은 단기적으로 미세조류가 증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조성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서식지의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쳐 주변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마레샬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높은 산에 미세조류가 증식한다는 증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알팔가 연구팀이 미세조류와 기후변화의 복잡한 관계를 연구하려는 이유다. 미세조류는 기후변화의 혜택을 보는 동시에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레샬은 “처음에 미세조류가 증식한다고 가정했다”며 “직접 목격도 했지만 증명을 위해 객관적인 수치가 필요했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마레샬과 동료들은 연구를 위해 2016년 해발 1250~3000m의 프랑스 알프스 5곳에서 흙 표본을 분석한 뒤 결과를 논문에 실었다. 토양 속에 DNA를 분석해 고도와 산도(pH), 환경에 따라 미세조류를 구분해 이들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 결과로 붉은 설원을 만드는 산구이나(Sanguina)는 2000m 이상에서만, 데스모코쿠스(Desmococcus)와 심비오클로리스(Symbiochloris)는 1500m 이하에서만 서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높은 고도에서만 서식하는 산구이나의 미세조류에게 눈 속의 안정적 온도가 중요한 환경 요인이었다.

눈 내리는 기간 단축은 산구이나 속 미세조류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일 수 있다. 산구이나 속은 생명체에 직간접적으로 영양분을 제공하는 생태계의 기반이다. 

마레샬은 “미세조류는 먹이사슬의 기반으로 생태계에서 광합성 발전소 역할을 한다”며 “주요 영양소인 미세조류가 사라지면 다른 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과는 다른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알팔가 연구팀은 새로운 연구를 통해 미세조류의 기본 통계뿐 아니라 앞으로 연구팀이 생태계에 구축하고자 하는 미세조류의 분포도와 행동 양식에 대한 정보도 제공했다. 결과는 모든 환경에 서식하는 주요 미세조류와 이들을 기반으로 형성된 생태계가 앞으로 10여 년에 걸쳐 발생할 지구 온난화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레샬은 “예전 지구가 사라져 설산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슬픈 일”이라며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연구자에게는 축복”이라며 전했다. 또 “새로운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새로운 생태계와 커뮤니티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