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디지털 패션’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까닭

게임 아바타가 아닌 당신을 위한 옷이다.
디지털 패션, NFT, 블록체인, 메타버스, 소셜미디어
3D 아티스트 스테피 펑이 가상 세계에서 디지털 옷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 스테피 펑 제공 

실생활에서는 입을 수 없는 가상의 옷을 실제 돈을 주고 구매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상의 옷은 ‘디지털 패션’이라고 한다. 실과 천이 아닌 픽셀과 프로그램으로 만든다.

전통 패션처럼 종류별로 옷과 액세서리가 있다. 상의부터 하의, 모자, 신발, 반지, 목걸이. 하지만 온라인에서만 착용이 가능하다. 어떤 것도 실제로 입기는커녕 만질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디지털 패션 아이템을 구매할까? 증강현실(AR) 기술이나 사진 편집을 이용해 본인 사진에 합성한 후에 실제로 입은 것처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경계는 이미 모호해졌다.

몇 년 전부터 소셜미디어 필터를 이용해 사진에 디지털 액세서리를 합성할 수 있다. 더구나 요즘 게임에서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구매해 아바타를 꾸미는 일도 흔하다.

게임 아바타를 위한 패션 아이템을 뜻하는 ‘스킨’ 시장은 수십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페이스북도 최근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사명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변경했다. 3차원 가상공간인 메타버스를 개발하는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디지털 패션을 개성과 창의력을 드러내는 또 다른 창구로 활용한다. 변화에 발맞춰 디자이너들도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디지털 패션을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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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회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는 22세 다누쉬 셰티는 “처음엔 이상했다”며 “하지만 저렴하고 구매 과정이 간단한 데다가 실제 옷보다 훨씬 윤리적”이라고 전했다. 또 “평범한 옷을 사면 치수를 맞춰봐야 하고 사진에 잘 나오는지, 생산 과정이 윤리적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할 필요 없이 살 수 있기 때문에 편하다”고 덧붙였다.

셰티는 지난해 8월 문을 연 미국 디지털 패션 업체 드레스엑스에서 디지털 옷을 처음 구매했다. 업체는 디자이너와 협업한 상품을 내고 단독으로 제작한 상품도 판매한다.

업체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AR을 통해 본인의 사진에 옷을 합성한 사진을 볼 수 있다. 옷을 구매하는 방법도 간단한 편이다. 고객이 사진을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에 업로드하면 하루 이틀 내로 소셜미디어에 올릴 수 있게 편집된 사진을 받을 수 있다.

드레스엑스 창업자 내털리 모드노바는 “우리 목표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디지털 옷장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공동 창업자 다리아 샤포발로파와 과거 패션계에서 일하면서 너무 많은 문제를 목격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패션 업계는 환경과 사회 문제의 중심에 있다. 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2018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패션 업계는 전 세계 폐수의 20%와 탄소의 10%를 배출한다. 또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주요 원인이다. 공장은 척박한 노동 환경으로도 악명 높다.

물론 디지털 패션이라고 해서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건 아니다. 데이터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대체불가능한토큰(NFT)을 만드는 과정에도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두 창업자는 “디지털 패션에도 문제가 많지만 대부분 해결책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샤포발로파는 “미래에는 모두가 디지털 옷장이 있고 디지털 옷을 사진이나 영상통화, 소셜미디어, 온라인 회의는 물론 게임에서도 쉽게 착용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디자이너도 제품을 생산할 필요가 없어 자본 없이도 경력을 쌓을 수 있다”고 봤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스테피 펑도 디지털 패션 덕분에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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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은 원래 3차원(3D)을 구현하는 아티스트였지만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디지털 패션 관련 광고를 위해 3D를 구현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게 전환점이었다. 그는 “디자이너가 디지털 옷을 처음부터 만드는 걸 보고 디지털 패션에 완전히 푹 빠졌다”며 “그제야 내 기술이 디지털 패션 산업에서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펑은 이제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만든 디지털 패션 아이템을 착용한 모습을 올린다. 

그는 “디지털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실제보다 더 멋져 보인다”며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기능을 패션 아이템에 넣을 수도 있어서 뭐가 가능한지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옷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떠다니거나 다양한 색깔을 발산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글자나 무늬가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고요. 가능성이 무한해요. 이 점이 재밌죠.”

또 다른 디지털 패션 회사 플라세보의 창업자 로에이 데르히는 디지털 패션을 접하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믿는다. 그는 드레스엑스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데르히는 “디지털 패션의 가장 좋은 점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이를 통해 현실의 제약을 넘어 환상을 구현한다”고 설명했다. 또 “소셜미디어에서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일부는 어떤 옷을 착용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싶다는 이유로 옷을 구매한다.

영국 온라인 은행 바클레이카드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인 10명 중 1명이 온라인으로 옷을 구매하고 한 번만 입고 반품한 적이 있다.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고 싶었던 거다.

영국에서 도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AR 크리에이터는 온라인이나 디지털 세계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실제 옷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도즈는 패션 브랜드가 AR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조사하다가 디지털 패션을 접했다. 패션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디지털 패션을 수용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본다.

그는 사람들이 이미 인스타그램 필터를 이용해 선글라스나 모자를 착용한다는 점과 루이비통이나 발렌시아 같은 유명 브랜드가 이 산업에 발 들였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모두 곧 다양한 메타버스, 즉 디지털 세상에서 일하고 살게 될 것”이라며 “사람들이 온라인상의 모습에 더 신경 쓰기 시작하면 디지털 패션은 더 흔해질 것”이라고 봤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옷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요? 특히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옷인데 가상 세계에서 실현이 가능하다면요.”

Romano San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