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경쟁 중에도 순수했던 ‘오징어 게임’ 알리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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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9화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1억1100만 가구가 시청한 넷플릭스 사상 가장 성공한 드라마가 됐다. 돈이 절박한 수백 명이 상금 456억원을 두고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잔혹해진 추억의 게임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드라마의 세계적인 열풍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단연 매력적인 캐릭터다. 캐릭터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외국인 알리 압둘이다.

알리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가족을 위해 고단히 투쟁하는 공장 노동자로 등장한다. 극적인 상황에서도 초지일관 선하고 순수한 마음을 보이며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래서 알리를 맡은 인도 출신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도 인기몰이 중이다.

VICE는 그에게 알리를 연기하면서 느낀 점과 일약 유명인이 된 소감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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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들어가기 전에 이 글에는 ‘오징어 게임’ 스포일러가 들어있다는 점을 알아두자.

알리는 공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다. 임금 체불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사장에게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하다가 엉겁결에 그를 해치고 도망치듯이 게임에 참가한다. 게임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불행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름이 공개되기도 전에 착한 심성과 이타성을 보여준다는 점부터 돋보인다. 첫 번째 게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중에 주인공 성기훈을 구해준 장면에서다. 199번 참가자 알리는 자신의 생사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훈을 필사적으로 도와준다.

트리파티는 VICE와 인터뷰에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로 외국인 노동자를 맡았다”며 “알리는 처음으로 생김새와 행동, 배경 모든 게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알리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지를 반영하는 인물이다. 현실의 이들과 마찬가지로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하기 어렵다. 한국인이 익숙한 게임을 두고 벌이는 예측 불가한 생존 게임에 앞서 기훈에게 “그런 거(전통 게임) 할 줄 몰라요”라고 침울하게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알리는 게임이 잔인해지는 과정에서 서서히 전투력을 드러낸다. 강하고 공격적인 사람에게 맞서 꿋꿋이 버틴다. 특히 아슬아슬한 분위기에서 이뤄지는 줄다리기 게임에서 가장 뒤에서 버티면서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게임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필수 구성원으로서 존재감을 각인한다.

트리파티도 줄다리기가 드라마 촬영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게임 중 하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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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치열하게 달고나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알리는 다른 영화와 드라마의 외국인 캐릭터와 달리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트리파티는 ‘오징어 게임’에서 톱배우 이정재, 박해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기한다.

“준비하면서 국내외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기사와 다큐멘터리를 보고 사람도 만났어요. 미래에 다른 역할을 많이 맡기 위해 알리를 최선을 다해서 잘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플랫폼에서 다양한 인물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오징어 게임’은 알리가 목숨이 걸려 있는 게임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보여준다. 그는 임금을 미루는 한국인 사장에게 몇 달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산업 재해를 당하고 손가락을 잃은 후에도 단 한푼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믿고 따랐던 다른 참가자 조상우에게 집에 있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정말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할 때 애절하고 절박하게 느껴진다.

‘오징어 게임’의 시청자들은 줄거리가 한국 사회의 갈등 상황과 맞물린다고 평가한다. 알리는 우리 주변이나 뉴스에서 착취와 차별을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일부는 낯선 땅에서 악덕 고용주를 만나 기댈 곳이 없이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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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가 임금 체불을 일삼던 한국인 사장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호주 정키미디어의 미셸 레넥스 기자는 “알리가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이유는 사장이 6개월간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됐다”고 썼다.

또 특징적인 건 알리의 예의 바른 자세다. 일부 시청자는 알리가 지나치게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현실의 가난하고 힘없는 외국인 노동자처럼 몸소 착취와 사회적 계급 체계를 경험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자세를 체화한 것으로 추측했다.

시청자는 “알리의 태도는 방어기제”라며 “피부색이 어두운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가 마주하는 억압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든 태도”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청자는 “알리는 한국인 참가자와 달리 공감 능력이 있고 타인을 존중한다”며 “비굴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규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리파티는 배역 알리와 다르면서도 닮았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온 공장 노동자인 알리와 달리 인도 델리에서 온 외국인 배우다. 하지만 그는 알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언어와 문화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여러 시도 끝에 마침내 영화 ‘국제시장’이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배역을 따냈다. 어쩌면 작은 외국인 노동자 역할에 불과하지만 배역을 소중히 여겼다.

트리파티는 “선택한 모든 길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라며 “눈앞의 어려움을 알았지만 긍정적이고 호기심 많은 성격 덕분에 한국에서 11년을 즐겁게 보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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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어둠 속에서 팀을 구성해 서로를 지키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그에게도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트리파티는 알리 역할을 얻기 위해 경쟁했다. 세 차례가 넘는 오디션을 치열하게 치렀다. 그러다 황동혁 감독의 눈에 들었다.

황 감독은 넷플릭스 인터뷰에서 “연기를 잘 하는 외국인을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며 “혜성처럼 나타난 게 트리파티”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말을 너무 잘할 뿐더러 제대로된 감정 연기까지 할 수 있는 친구”라며 “너무 깜짝 놀랐다”고 칭찬했다.

트리파티에게 ‘오징어 게임’은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넷플릭스에서 전화가 걸려 온 순간을 회상하며 “기쁨에 겨워 춤추면서 가족과 친구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물론 190여개국에 방영될 대작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부담이 몰려왔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대본을 펼친 순간 물러날 수 없었다. 이야기에 빠져들며 대본을 단숨에 읽었다.

“엄청났어요. 가장 매력적인 건 아이들 게임을 통해 누가 죽고 살지 정해진다는 점이었죠. 또 대본을 보면 각 인물이 나름의 이유로 내적 갈등을 겪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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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에서 구슬을 바라보는 알리. 사진: 넷플릭스 제공

그렇다면 촬영장에서는 어떤 경험을 했을까. “정말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어요. 알리를 연기하러 촬영장에 갈 때마다 신나고 설렜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억할 거예요.”

서바이벌 장르 드라마를 시청한 적이 있다면 인물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데 익숙할 거다. 알리는 6화에서 가장 믿었던 상우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목숨을 잃는다. 목숨을 내놓고 믿었던 형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말없이 눈물만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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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게임을 하는 조상우와 알리. 사진: 넷플릭스 제공

한 팬은 트위터에 “아무리 순수하게 사람을 대해도 어떤 부류는 그걸 이용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팬은 “알리는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질 자격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트리파티는 “(속상해 하는) 팬들을 모두 직접 가서 꼭 안아주고 싶다”고 전했다. 또 “알리를 사랑해 줘서 고맙다”며 “팬에게 받은 메시지를 잘 읽어본다”고 덧붙였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뒤통수치는 다른 사람과 달리 친절하고 용감했던 알리를 기리며.

Heather 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