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면을 쓴 얼굴 없는 캐릭터 ‘가오나시’나 고양이와 곰을 섞은 듯한 수상한 동물 캐릭터 ‘토토로’를 여기저기서 봤을 거다. 또 잘생겼지만 사랑할 수 없는 마법사 캐릭터 ‘하울’도 들어봤을 거다. 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에 관해 잘 모른다면 도대체 사람들이 왜 다들 지브리 캐릭터에 열광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는 지난 30년간 영화를 제작하며 사랑받았다.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동업자 다카하타 이사오, 스즈키 토시오와 도쿄에 본사를 두고 설립한 회사다. 설립 몇 년 만에 큰 인기를 끌었고 곧 주류 영화계에서 연신 신기록을 세워나갔다. 일본의 시상식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도 전례 없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지브리는 24편 이상의 영화와 TV 시리즈로 팬과 비평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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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지브리 영화를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사소한 작은 부분까지 공을 들인 하나의 종합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이들처럼 미야자키 감독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더빙 영화 클립을 몇 편 봤다고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입문자를 위해 영화 추천순서와 이유를 담은 ‘지브리 영화 안내서’를 준비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작품을 일본어로 제작한다. 원어 영상을 자막과 보길 추천한다. 봉준호 감독 말처럼 “1인치 자막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마녀와 마법 이야기
스튜디오 지브리 영화는 마법과 아주 밀접하다. 마녀부터 마법사, 영적인 존재,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신기한 경험을 많이 담고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단순히 마법의 화려하고 신기한 측면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보통 엄청난 대가가 뒤따른다고 묘사한다. 지브리의 대표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마법과 같은 기묘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고전 명작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더 깊이 있고 성숙하다.
주인공 소녀 치히로는 우연히 영혼 세계에 갇히고 부모님이 돼지로 변한 모습을 목격한다. 길을 잃고 겁에 질린 치히로는 온천탕에 취업한 뒤 인생을 뒤바꾸는 선택을 한다.
또 마법하면 ‘마녀 배달부 키키’를 뺄 수 없다. 키키는 소녀지만 전형적인 마녀다. 날아다니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고 항상 옆을 지키는 말하는 검은 고양이를 대동한다. 키키는 안락한 집을 떠나 모험을 떠나지만 좌충우돌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다. 갑자기 마녀로서 능력이 약해져 크게 좌절하지만 스스로 돌보며 기운을 차린 뒤 제 모습을 찾는다. 특히 지치고 우울하고 예전의 모습을 잃은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보기 완벽한 영화다.
추천 시간: 조카 돌봐줄 때, 핼러윈 때, 늘어지기 좋은 토요일 저녁에
이 작품을 좋아했다면: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그녀는 요술쟁이’, ‘오즈의 마법사’
추천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녀 배달부 키키’,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아야와 마녀’
환경과 자연 이야기
미야자키 감독의 자연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자연에 대한 메시지는 ‘모노노케 히메’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웃집 토토로’에 잘 녹아 있다. 그는 현지 닛폰닷컴과 인터뷰에서 “자연을 단순히 인물의 배경으로 보지 않는다”며 “자연을 이루는 모든 게 아름답다고 생각해 작품에 최대한 녹여내려 한다”고 설명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유독 물질과 거대 돌연변이 곤충으로 뒤덮인 지구가 배경이다. 황폐한 세계관 속에서 다른 생명체와 맞서 싸우는 인류의 생존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수질 오염과 간척 문제를 흥미로운 이야기에 녹여낸 작품이다. 영화 속 강은 인간의 탐욕의 결과로 폐기물 오염이 매우 심각해진 상태로 등장한다. ‘모노노케 히메’는 생존의 문제를 다룬다. 언뜻 보면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인간이 서로 죽으라고 싸우고 자연과 대적하는 내용이 담긴 암울한 이야기다.
‘이웃집 토토로’는 나무와 들판, 맑은 강과 개울 같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으로 가득하다. 어린 자매 사츠키와 메이가 아빠를 따라 일본 시골로 이사를 온 뒤에 극 중 마스코트인 토토로를 비롯한 숲속 요정들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추천 타이밍: 긍정의 기운이 필요할 때, 환경에 대한 걱정이 심해질 때, 비 오는 날
이 작품을 좋아했다면: ‘아바타’, ‘포카혼타스’, ‘옥자’, ‘요정 크리스타’
추천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붉은 거북’ ‘가구야공주 이야기’
실없는 동화 이야기
지브리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삶에 찌든 우리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준다는 점이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는 않지만 ‘벼랑 위의 포뇨’나 ‘이웃집 토토로’처럼 가벼운 분위기다. ‘벼랑 위 포노’는 가만히 생각하면 황당할 정도다. 바다의 공주인 금붕어가 소년인 소스케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니 말이다. 소스케 가족과 함께 있겠다는 일념 하나로 소스케 마을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와 비슷하다.
‘고양이의 보은’은 부끄럼 많은 여고생 하루가 고양이를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시작한다.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했던 고양이가 사실은 고양이 왕국의 왕자인 ‘룬’이었던 것이다. 고양이 떼는 구해준 하루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왕자와 결혼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야기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자. 편한 마음으로 앉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고양이 ‘무타’가 과거 연못의 물고기를 싹쓸이한 전설적인 범죄자 ‘르날도 문’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을 볼 때도 심각하게 분석하려고 들지 말고 그냥 실없이 웃어보자.
추천 타이밍: 연인과 데면데면할 때, 휴식이 필요할 때
이 작품을 좋아했다면: ‘아리스토캣’, ‘캣츠’, ‘캣츠 앤 독스’ 시리즈
추천 작품: ‘고양이의 보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벼랑 위의 포뇨’, ‘붉은 돼지’
강한 여성들 이야기
미야자키 감독은 어린 여주인공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 그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관련 인터뷰에서 “친구 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인공 소녀 치히로는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온갖 역경에 맞선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키키부터 ‘모노노케 히메’의 늑대 소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도 지브리의 대표 여성 캐릭터다.
‘추억의 마니’의 고아 소녀 안나는 요양을 위해 온 시골 마을에서 만난 금발 소녀 마니와 함께 여름을 보내면서 치유 과정을 겪는다. 관계를 통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다룬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추억은 방울방울’에도 강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도시에서 성장한 20대 싱글 여성 타에코는 휴가차 떠난 시골 여행에서 사랑에 빠진다. 추억과 성장을 주제로 안식을 얻길 원하는 모든 여성이 공감하기 쉽게 만든 이야기다.
영화의 마지막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작별을 고하는 장면인데 명장면으로 꼽힌다. 일본 가수 미야코 하루미가 부른 미국 가수 베트 미들러의 고전 명곡 ‘더 로즈’가 나온다.
추천 타이밍: 친구랑 함께 있을 때, ‘여성의날’ 기념을 위해
이 작품을 좋아했다면: ‘아나스타샤’, ‘작은 아씨들’, ‘레이디 버드’, ‘모아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추천 작품: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녀 배달부 키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추억은 방울방울’, ‘추억의 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