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강대 강으로 시민들을 더욱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지난달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의 철회로 주춤할 조짐을 보이던 홍콩의 시위가 경찰의 잇따른 강경 진압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정부가 사실상 계엄령에 해당하는 ‘복면금지법’을 곧 시행할 예정이라 더 큰 반발이 일어났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4일 점심 현지 시민 수천명이 코즈웨이 베이를 비롯한 시내 중심부에서 복면금지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Videos by VICE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법은 이르면 이날 자정부터 발효된다. 그렇게 되면 경찰은 시민들에게 복면을 벗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불응하는 경우 최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만5000홍콩달러(약 381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경찰이 신분을 숨기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복면을 벗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법에 따라 해당 시민은 이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건강 상태나 종교적인 이유로 마스크를 쓰는 경우는 예외로 인정된다. 정부는 이 법을 비상 상황에서 의회의 동의 없이 긴급법으로 통과시켰다. 당국이 막대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사실상 계엄령에 해당한다.
앞서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지난 1일 홍콩 경찰이 근거리에서 실탄을 발사해 18세 고등학생이 중상을 입는 일이 있었다. 4개월가량 이어지고 있는 이번 홍콩 시위에서 경찰이 실탄을 쏜 건 처음이었다. 학생은 가슴에 박힌 실탄을 제거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다. 실탄은 아슬아슬하게 심장과 3cm 떨어진 부위에 맞았다.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경찰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셌다.
홍콩은 물론 한국에서도 홍콩 정부의 무차별 폭력을 멈추라는 연대가 일어났다.
한국 시민사회단체 65개와 재한 홍콩인들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학생에게 근거리에서 실탄을 발사한 홍콩 경찰을 강력 규탄한다”며 “무차별적인 폭력과 과잉 대응을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는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과 인권운동공간 활의 랑희 활동가, 한국 YMCA 전국연맹 양다은 활동가 등이 참가해 발언했다.
하지만 홍콩 당국의 태도는 민심을 역행한다. 경찰은 공격당한 고등학생을 폭동 혐의로 기소했다. 홍콩에서 폭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경찰은 실탄을 쏜 해당 경찰을 방호하고 나섰다. 탕핑컹 경찰 부책임자는 “(실탄 발사는) 경찰이 위협 받았던 상황에서 법에 맞고 합리적인 대처”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민주당 에밀리 라우 전 의장은 VICE와 인터뷰에서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옳았다고 하는 경찰의 발표에 많은 이들이 충격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사실 경찰의 강경 진압에 심하게 다친 시위자는 이 고등학생뿐이 아니다. 지난달 말 완차이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인도네시아 기자가 경찰이 쏜 고무 총알에 오른쪽 눈을 맞았다. 이 기자는 시위 참가자도 아니었지만 경찰의 공격에 영구 실명 위기에 처했다.
홍콩기자협회는 “인도네시아 기자는 분명 기자라는 표식이 있는 옷을 입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라우 전 의장은 복면금지법을 시행하는 정부에 경고했다. 그는 “법이 발효하면 복면을 쓰고 나갈 것”이라며 “시민 20만명도 복면을 쓰고 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은 감옥을 10개 이상은 더 지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