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엄마가 날 병들게 하려고 벌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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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보호자는 자녀를 고의로 학대한다. 또 환자로 만들어놓고 돌보는 모습을 연출한다. 다른 사람의 관심과 동정을 받기 위해서다. 이런 정신 질환을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한다. 풀어서 말하면 ‘돌봄이가 날조한 질병’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학대를 가리킨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각본가들은 한때 이 증후군을 영화 속에 자주 녹여냈다. 영화 ‘식스센스’에서도 아이를 일부러 아프게 한 새엄마 때문에 숨진 소녀 유령이 나온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실제 사례를 찾긴 쉽지 않다. 그래서 미국 여성 줄리 그레고리의 사연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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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를 받은 그레고리는 1969년에 태어나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시골에서 성장했다. 그는 학대가 언제 시작됐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고 기억할 뿐이다. 크면서 이 학대의 명칭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물어봤다. 무작위로 아무 약을 먹어야 했던 순간부터 14살 때 학대를 깨달은 순간까지.

아래부터는 VICE가 그레고리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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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 줄리 그레고리와 동생 대니

가장 오랜 기억 중 하나는 좋은 거예요. 아빠가 운전하고 전 엄마 무릎에 앉아있었죠. 엄마는 제 긴 금발 머리를 사랑스럽게 만져줬어요. 엄마 가방을 뒤적이자 엄마가 “막대사탕 찾니?”라고 물어보더니 가방에서 사탕 상자를 찾아줬어요.

엄마가 사탕 상자를 줬고 거기서 하나를 골랐죠. 혀에 대자 익숙한 금속 맛이 느껴졌어요. 그 사탕을 한참 빨아 먹었어요. 사실 아주 오랫동안 그 사탕의 정체를 몰랐죠. 그때 빨던 건 사탕이 아니라 성냥이었어요. 엄마는 항상 제가 그걸 먹기를 바랐어요. 저한테는 엄마가 주는 성냥 상자 하나를 다 빨아 먹을 때 칭찬받는 게 일상이었죠.

엄마를 싫어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많이 사랑했죠. 아이라면 당연히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은 본능이 있잖아요. 어릴 땐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서 뭐라도 했어요.

어린 시절에는 친구가 없었어요. 집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었죠. 산골에 살았거든요. 집에서 기르던 동물을 데리고 놀았어요. 가족은 엄마와 아빠, 남동생 대니, 저 이렇게 4명이었어요. 대니는 7살 어려요. 비포장도로에 이동식 집 두 채를 합쳐 살았어요.

전 엄마와 한 몸 같았어요. 독립 생활이 불가능했죠. 아주 어려서부터 엄마는 절 의사에게 데려가 어딘가 아픈 것 같다고 말하라고 했어요. 보통 한 의사에게 약 하나를 받고 다른 의사한테서 다른 약을 받았어요. 알고 보니 엄마는 어떤 약을 섞어 먹으면 안 되는지 조사했더라고요. 또 그 약을 처방해줄 의사를 찾았죠. 그런 식으로 절 아프게 했어요.

엄마는 예쁘게 보이고 싶어 했어요. 사람들과 동떨어진 곳에 살다 보니 화장하거나 머리를 손질할 일이 거의 없었죠. 의사에게 갈 때는 옷을 쫙 빼입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의사한테 좋은 말을 듣길 바랐던 거 같아요. 의사들은 하나 같이 엄마를 훌륭한 엄마처럼 대했어요. 엄마는 관심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아이가 필요했던 거죠.

절 아프게 만들기 위해 밥을 일부러 안 주기도 했어요. 아침밥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갔고 점심도 못 먹었어요. 엄마가 신청서 작성을 안 해줬죠. 너무 허기진 채로 집에 와도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알레르기가 있다며 음식을 주지 않았죠. 그래서 항상 전 굉장히 마르고 피곤했어요. 그러다 보니 엄마에게 더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요.

성장하면서 학교 상담사에게 이런 얘기를 해보려고 했지만 믿어주지 않았어요. 그때 당시만 해도 아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아무도 심각하게 듣지 않았거든요.

10살 때쯤 엄마는 동생한테도 비슷한 행동을 했어요. 엄만 동생이 천식과 호흡 곤란이 있다며 치료하고 싶다고 했어요. 아빠는 만사가 귀찮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아빠가 갑자기 엄마 손목을 잡더니 조리대에 내려치던 모습을 기억해요. 몹시 화가 난 채로 엄마에게 “아들한테 이딴 짓 하지 마. 걘 아무 문제 없으니까”라고 말했죠.

아빠는 절 도와주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나 봐요. 제가 딸이란 이유도 한몫했을 거예요. 그때만 해도 딸은 아들만큼 중요하지 않았어요. 아들을 사랑한 만큼 딸인 절 사랑하진 않았던 거죠. 그래서 엄마의 실험용 쥐는 대부분 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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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 줄리 그레고리의 어렸을 때 사진

12살 때 엄마는 절 새로운 의사에게 데리고 갔어요.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의사가 일어나라고 했죠. 먹은 게 하나도 없어서 일어나자마자 어지러웠어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꼈죠. 의사는 심장 문제가 있다면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어요. 엄마는 그 말에 완전히 꽂혀서 그날부터 사람들에게 제 심장이 안 좋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몇 년에 걸쳐 심전도 검사를 수차례 받았어요. 엄마는 심장 수술을 받도록 일을 꾸몄어요. 14살쯤 절 입원시켰던 것 같은데 그때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예요. 세 끼 꼬박꼬박 먹고 과일에 젤리까지 잔뜩 먹을 수 있었죠. 간호사도 친절했고 엄마가 근처에서 때리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일도 없었고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 좋았던 시간도 얼마 가지 않았지만요.

입원 마지막 날 간호사가 다가와 면도를 해야 한다더라고요. 가슴 쪽을 이미 다 밀었다고 얘기하니까 성기 쪽도 면도해야 한다고 했어요. 지금까지도 뭘 하려고 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고 침대 뒤쪽으로 바짝 붙어서 이불로 몸을 감싸고 저도 모르게 말해버렸어요. “싫어요! 엄마가 모두 꾸민 일이에요. 사실 안 아파요!”

둘 다 바짝 얼어붙어 있다가 간호사가 마침내 입을 떼고 “다시 올게”하고 나갔어요.

혼란스러웠어요. 한 말에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도 몰랐죠. 하지만 확실한 건 병원에 있으면서 몸이 좋아졌고 살면서 그런 적이 처음이었다는 거였어요.

간호사가 화가 나서 돌아왔어요. 걸음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죠. 말을 믿을 리가 없었어요. 곧 어른들이 몰려오더니 마취했어요. 그게 병원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에요.

집으로 오면서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어요. 말을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얼마 후에 병원에 엄마랑 같이 가서 심장 전문의를 만나 수술 결과를 들었어요. “좋은 소식이 있어요. 따님은 완전히 괜찮습니다. 추가 수술이 필요 없어요.”

엄마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미친 듯이 화를 냈어요. 그러더니 “선생님은 저와 같은 생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심장 수술을 안 한다고요?”라고 소리쳤죠.

의사가 엄마를 봤어요. 엄마에게 문제가 있다고 눈치챈 것 같았어요. 진지한 목소리로 “수술이 더는 필요 없어요. 칼을 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말하곤 나갔어요.

전 아이의 순수함을 모조리 잃어버렸던 것 같아요. 진실을 알았지만 위험한 가족들의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시 모른 척 해야 했어요. 정말 좋은 가정환경은 아니었어요. 마침내 시설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가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첫 여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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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 줄리 그레고리(오른쪽)와 딸

몇 년이 지나 엄마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정식 의학 용어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심리학 시간에 교수님이 잘 알려지지 않은 학대 행위라며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설명했죠. 보통 보호자인 가해자가 질병이나 상해를 가하거나 조작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아프게 해 병원에서 수술하게 하려고요. 심할 때는 아이가 죽기도 한다고요.

이 설명을 듣는 순간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어요. 호흡이 가빠지고 손이 땀 범벅이 됐죠. 몸에 열이 펄펄 났어요.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 계단 옆 벽에다가 머리를 쿵쿵 박았어요.

그동안 겪은 고통과 주사들, 약들, 이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던 거잖아요. 의사를 비롯해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모든 이들이 그동안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던 거죠. 그저 사이코패스 한 명이 휘두르는 대로 이끌렸을 뿐 한 명도 도우려 손 내민 적이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