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헤어지고 나서도 좋은 친구로 계속 잘 지내는 방법

A transfeminine non-binary person and transmasculine gender-nonconforming person embracing

우린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을 겪는다. 이별은 대면했을 때 벌어지기도 하지만 ‘문자 이별’처럼 메신저로 이뤄지기도 하고 ‘잠수 이별’처럼 소통 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부분은 헤어지면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한다. 전 애인과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잃는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별은 단지 관계의 변화일 뿐, 관계의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인생에서 한때 중요한 사람이었으니 그대로 곁에 남아주길 바라는 거다.

전 애인과 친구로 지내는 게 정말 가능할까? ‘연인이 친구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은 사람마다 견해의 차이가 큰 논쟁적인 주제다. 특히 요즘은 소셜미디어처럼 연락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연애에서 우정으로 어떻게 잘 넘어갈까? 넘어갈 때 생기는 문제는 어떻게 피해야 하나? 언제 선을 긋고 언제 가까이해야 할까? 전문 상담사에게 전 애인과 친구가 되는 것의 의미와 주의사항, 절교 신호를 물어봤다.

이별 후에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

가장 중요하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조언이다. 변화를 위해 자기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상황마다 형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둘 사이에 아이나 반려동물이 있거나 차나 집을 같이 쓰고 있다면 문제가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상대와 멀어질 수 있다면 이별 후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이 더 신속하고 수월할 거다. 연인이었던 상대와 매일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이 처음엔 죽을 듯이 힘들 수 있겠지만.

미국 사회복지사이자 심리상담사 에이브리 토드는 끝맺음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관계는 시작과 중간, 끝이 있다”며 “관계 지속 기간에 상관없이 관계의 시작과 중간에 그랬던 것처럼 끝맺음을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난 마지막 연애할 때 애인과 동거하다가 이별했다. 그때 상대를 도려내는 게 쉽지 않았다. 사실 속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쨌든 상대와 함께 살면서도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 잠자리를 따로 마련했고 친구의 집에서 지내는 날도 있었다.

또 욕조에서 조용히 울고 싶어 혼자 여행도 갔다. 기존 관계에서 막 벗어나는 단계에 있다면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모든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정말이다.

이 또한 지나간다. 

과정 중 두려움과 의구심,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전 애인과 거리감이 느껴진다면 상대가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역할이 불가피하게 바뀔 뿐이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만약 상대가 변화를 거부한다면? 이럴 경우에는 확실하게 선을 그어줘야 한다. 선을 정확히 정하고 상대에게 전해야 한다. 변화를 주저하는 상대와 대화할 때는 상대의 두려움을 우선 받아들이고 인정해주자. 또 선 긋기를 흐지부지했을 때 분노를 사거나 상황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그러면 앞으로 관계가 좋을 리 없다.

경험상 타임라인을 정하고 상대와 공유하면 상대의 두려움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30일 동안 각자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한 뒤 잠깐씩 시간을 내서 안부를 묻는 거다. 한 번 해보고 나서 각자의 시간이 더 필요한지, 다른 방법이 나을지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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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될 마음의 준비 먼저 하기

심리상담사 토드는 이별 후에도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특히 성소수자라면 상대와 필연적으로 다시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마음을 무참히 짓밟은 상대와 친구가 될 준비가 됐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전 애인과 관계를 잘 유지하는 기자 수전 밋우치는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를 받았을 때 옛 연인이 아닐까 두려움이 먼저 든다면 이르다”며 “상대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동료에게 보여주며 무심하게 ‘얘 머리 웃긴 거 봐’라고 할 수 있다면 때가 됐다”고 전했다.

외롭고 우울하고 심심해 일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으면 준비가 덜 된 거다. 해소 못 한 문제를 들추거나 ‘안 보고 싶어?’ 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도 아직 아니다.

정말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친근하면서 너무 사적이지는 않은 메시지를 보내보자. 밋우치의 조언처럼 “말미잘 관련 기사를 봤는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잘 지내?”

친구가 되려는 이유 잘 생각해보기

기간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고 가정하자. 전 애인을 생각할 때 슬프지도, 화 나지도, 복수심이 끓지도 않으면 이별을 극복한 거다. 그러고 나면 다음 단계로 왜 상대와 친구가 되고 싶은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학술지 ‘인간관계’의 한 연구는 전 애인과 친구가 되려는 마음을 4가지로 정리했다.

바로 안정감과 실용성(공동 소유 재산 등), 예의, 미련이다.

연구에 따르면 미련이 남았거나 예의를 갖추기 위해 친구로 남는 경우는 끝이 좋지 않았다. 반대로 안정감이나 실용성을 이유로 친구로 남는 경우 결과가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그러니 왜 상대와 계속 가까이 있고 싶은지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다른 꿍꿍이가 있다면 회복 시간을 더 보내보거나 관계를 끊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만날 땐 중립적인 장소에서 만나기

충분히 자기 시간도 가졌고 동기도 분석했고 전 애인을 볼 준비가 됐다면 뭘 해야 할까? 물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팁을 준비했다. 사귈 때 함께 자주 갔던 식당이나 스킨십을 나눴던 공원은 만남 장소로 피하는 게 좋다. 옛 감정에 사로잡힐 만한 장소는 피하자.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감정을 쏟아내면서 싸우거나 같이 잠자리를 함께하게 될 거다. 

대낮의 다른 사람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만난다면 이런 충동을 잘 억누를 수 있다. 인간관계가 얽혀 있다면 새로운 우정의 시험대로 여럿이 함께 만나는 장소가 적당하다. 서로 아는 친구와 함께 만나면 둘만의 대화가 심각해지는 걸 막을 수 있어서 가장 좋다. 주인공이 따로 있는 생일 파티도 적당히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괜찮다.

나와 전 애인의 경우는 헬스장이 괜찮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싸우지는 않았다. 운동하면서 힘을 빼다 보니까 서로에게 남아 있던 나쁜 감정이 풀리는 것 같았다.

우연히 만났을 땐 마음 들여다보기

전 애인을 안 보려고 애를 쓰는 시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꼬질꼬질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마트에 나갔을 때 전 애인을 만날 수도 있다. 토드는 이런 상황에서 ‘마음챙김’을 권했다. ‘마음챙김’은 매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되 주관을 개입하지 않고 관찰하는 수행 방법이다. 그는 “상대에게 아직 강한 감정이 남아있다면 마음챙김을 통해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마음의 압박을 한층 덜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잠시 생각에 집중해 미소 지으며 인사할지, 못 본 척 친구랑 대화를 이어 나갈지, 화장실로 숨어 울고 나올지 결정하면 된다”며 “가끔은 3개 다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도망가고 싶다면 그렇게 하더라도 괜찮다. 토드는 “자신에게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라며 “내외부적인 압박에 신경 쓰지 않고 필요한 것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적당한 선을 긋고 그 선을 유지하기

전 애인과 가끔 만나다 보면 과거 상처가 다시 떠오를 수 있다. 사람이니까 당연하다. 중요한 건 이런 감정이 올라올 때 알아차리는 거다. 그래야 다음에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예전 애칭을 쓰거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거나 당신의 새 애인에 관해 떠벌리고 다녀 속상하다면 주목할 만한 신호다. 이걸 기준으로 삼고 선을 그으면 된다.

당장 상대에게 선을 긋는다고 해서 평생 그 상태로 유지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솔직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언제든지 상황을 재평가하고 조정할 수 있다. 상대와 이 부분을 확실히 해두고 논의하면 모든 과정이 더 수월해질 수 있다.

토드는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관계를 재정비하라”며 “시간 여유를 충분히 두고 연애 중 한때나마 했던 기대는 모두 내려놓고 자신의 회복에 집중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경계를 확실히 해두면 친구 사이가 궁극적으로 내게 좋은지를 결정할 때 도움이 된다.

제멋대로 경계를 넘나드는 상대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상대와 시간을 함께 보낼 때 자신의 기분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잘 살펴야 한다.

애정 관계를 연구하는 미국 ‘고트먼 연구소’에 따르면 건강한 관계는 부정적인 경험 1번, 긍정적인 경험 5번을 한다.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하고 언제나 성숙한 사람처럼 행동할 수 없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전반적으로 좋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주의 신호다.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자기감정이다. 전문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러고 싶지 않고 할 수 없으면 이미 충분하다.

연인에서 친구로 바뀌는 과정이 모두 완벽할 필요는 없다. 가끔 실수하거나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실수 한 번에 관계가 망했고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둘 모두에게 어떤 방법이나 관계가 최선인지를 충분히 여유를 두고 고민해보면 된다.

육체적 사랑이 있건 없건 모든 관계는 나름 애로사항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 인간이라면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우정을 오래 쌓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