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사람들이 한류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

케이팝을 좋아하는 한국 팬.

한류가 필리핀을 강타했다. 사실 이건 한국 사람들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뉴스를 통해 보고 들었을 뿐 아니라 여행을 통해서도 체감하기 때문이다. 한국 식당 앞에 매일같이 길게 늘어선 줄, 몇 분 안에 모두 팔린 케이팝 콘서트 티켓, 황금시간대에 전국에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 전국의 쇼핑몰에 들어선 한국 화장품 매장까지. 필리핀에서 한류의 인기를 느낄 수 있는 현상은 이 밖에도 많다. 2018년 필리핀에서 유독 거셌던 한류의 열기는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한류의 팬과 동호회 수가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나라다. VICE가 필리핀의 한류 팬들에게 물어봤다.

한국과 한국의 문화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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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케이팝 한국 드라마
그룹 갓세븐이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투어 공연을 벌이고 있다. 사진: Denise 제공

데니즈, 25세

한국 문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국 대중문화는 2008년과 2009년부터 필리핀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룹 슈퍼주니어가 앨범 ‘쏘리 쏘리’를 발표했어요. 사촌 동생이 먼저 케이팝에 빠져들었고 저한테도 소개해줬어요. 그렇게 둘다 케이팝의 팬이 됐어요. 그 뒤로 케이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어떤 것까지 해봤나요?
한국 문화와 드라마, 음악을 모두 좋아해요. 그래서 서울에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수학했어요. 감사하게도 어머니께서 허락해주신 덕분이었죠. 서울에서 지냈던 4개월 동안 몰랐던 서울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었어요. 교환학생이 인생을 바꿨죠. 케이팝, 드라마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도 눈을 떴어요.

하루는 새벽 3시에 기숙사에서 빠져나와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아이돌이 예능 프로그램 녹화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국 앞에서 다른 팬들과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렸어요.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아이돌이 출연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요. 사실 케이팝 팬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제게는 특별한 일이었어요. 전에는 가수를 보려고 이런 일까지 할 줄 정말 몰랐거든요.

한류 케이팝 한국 드라마
필리핀 케이팝 팬 데니즈가 그룹 슈퍼주니어의 동해 사진 밑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Denise 제공.

한국 문화가 삶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 문화는 지난 수십 년간 삶의 일부였어요. 20대 후반까지 빠져 있을 줄 몰랐어요. 근데 이렇게 됐네요. 1년에 최소 한 번 서울에 가서 카페와 미술관에 들러요.

한국에 갈 때마다 새로워요. 다른 면을 발견할 때마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어요. 최근 한국의 타투 문화에 사로잡혔어요. 타투가 한국에서 사실상 불법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한국 타투이스트들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굉장히 유명해요. 하지만 정부는 의사가 아닌 타투이스트의 타투 시술은 합법적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요. 지난해 9월 서울을 마지막으로 다녀왔어요. 한국에서 멋진 타투 시술도 받고 문화 체험도 하려고요. 다양한 문화를 계속 알게 되니까 흥미가 떨어지지 않아요.

저는 평범한 케이팝 팬이에요. 아이돌 멤버뿐 아니라 음악과 콘셉트, 팬 서비스까지 다 좋아해요. 케이팝은 직장에서 지친 저를 달래주는 낙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입대한다고 했을 때 직장에서 일하다가 울기까지 했어요. 그만큼 엄청나게 빠져 있었죠.

어느 날 케이팝을 더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도 (지금으로선 그렇게 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한국 문화는 영원히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할 것 같아요. 소중한 추억이 남아 있어요.

한류 케이팝 한국 드라마
한국식 바비큐. 사진: Kristian Ryan Alimon on Unsplash.

트리니, 24세

한국 문화의 어떤 점이 좋아요?
음식이요. 일주일에 두 번은 삼겹살을 먹으러 가요. 몇 시간 동안 순서를 기다려가면서요. 기다리면서 주로 볼일을 보지만요. 규모는 작지만 한국식 삼겹살을 하는 식당도 찾았어요. 줄도 길지 않아요. 고기가 좀 더 비싸지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운동해서 살 빼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한국 드라마를 볼 때마다 삼겹살이 정말 먹고 싶거든요. 김치와 마늘이 듬뿍 나오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제일 좋아해요.

맛 외에 어떤 점이 좋아서 가나요?
한국 식당은 친구와 어울리기에도 좋은 장소에요. 서로 돌아가면서 고기를 굽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식사 시간이 길어서 서로 대화도 많이 나눌 수 있고요. 식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특히 좋아해요. 사람들이 모두 신이 나 있거든요. 식당에서 틀어주는 음악도 좋아요. 다른 문화를 많이 알 수 있어요. 한국 전통의상을 입게 해주는 식당이 한 곳 있어요. 전통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정말 귀엽게 나오더라고요.

데그스, 26세

케이팝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살면서 암울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친구가 케이팝 콘텐츠를 보여줬어요. 장르 자체가 새로웠어요. 새로운 음악을 알게 돼서 기분이 좀 들뜨더라고요.

한류 케이팝 한국 드라마
데그스가 수집한 한국 아이돌의 굿즈. 사진: Degs 제공.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어떤 것까지 해봤나요?
가장 좋아하는 ‘최애’ 아이돌 멤버를 따라서 타투 시술을 받은 일이에요.

한국 문화가 삶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때 한국인 친구가 있었어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던 친구였어요. 그 친구와 지내면서 케이팝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됐어요. 덕분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아하는 미국 아티스트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도 한국계 미국인이에요.

한류 케이팝 한국 드라마
그룹 몬스타엑스의 미니 콘서트. 사진: Denise 제공.

제임스, 26세

한국 문화의 어떤 점이 좋아요?
케이팝에는 최근에 빠졌고 원래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요.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호텔 델루나’ ‘응답하라 1988’ ‘시크릿가든’이에요. 엄마와 같이 즐길 수 있어 좋아요.

필리핀 드라마보다 한국 드라마를 더 좋아하나요?
네 물론이죠. 필리핀 드라마는 완성도가 떨어져요. 한국 드라마는 대본이 정말 좋아요. 배우들의 연기도 완벽하고요. 모든 장면이 아름다워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제가 아름다운 한국에 실제로 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미치, 24세

한국 문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한국 문화는 잘 모르지만 케이팝을 정말 좋아해요. 케이팝은 팝송과 구조적으로 달라요. 파격적이고 흥미롭다고 할까요. 좋아한 지 2년 정도 됐어요. 앨범과 굿즈(기념품)도 사서 모아요. 가장 좋아하는 그룹은 레드벨벳과 NCT, 트와이스예요.

한류 케이팝 한국 드라마
그룹 트와이스 콘서트 티켓과 응원봉. 사진: Mich 제공.

케이팝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케이팝은 항상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고 생각해요. 모든 문화권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이에요. 케이팝은 기본적으로 주제가 긍정적인 편이에요. 또 현실과 동 떨어진 느낌이 있어요. 물론 이게 항상 장점은 아니에요. 복스(VOX) 다큐멘터리에서 케이팝의 뿌리를 자세히 다룬 걸 봤어요. 아이돌을 완벽하고 이상적인 세계에 사는 사람들로 홍보해서 대부분 팬은 아이돌이 실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잊게 해요.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어떤 것까지 해봤나요?
비싼 콘서트 티켓을 구매한 일이에요. 정말 비싸거든요. 평소에는 누군가를 위해 198달러(약 20만원)를 쓰지 않아요.

아키, 30세

처음 어떻게 케이팝을 좋아하게 됐나요?
솔직히 제게 케이팝은 탈출구였어요. 2009년부터 팬이었어요. 이제 정말 10년이 넘었군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케이팝을 들으면 괜찮아져요. 일에 집중하고 싶을 때 듣기도 해요. 아이돌들의 춤을 따라 하는 영상도 찍어봤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WA_Pfi_bOww

춤 영상을 찍은 일이 가장 미쳤다고 생각하는 일이었나요?
아니요.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려고 밖에서 17시간 동안이나 기다린 일이에요. 그때는 복권 같은 시스템이라 티켓을 꼭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어요. 마냥 기다렸어요.

마라, 28세

한국 문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피부관리 때문이에요. 한국 미용 유튜버들이 10단계로 피부관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많은 유튜버들이 찍은 브이로그(평범한 일상을 녹여낸 영상)에서 피부가 급속도로 좋아지는 과정을 봤어요. 제 피부가 그렇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많이 건조한 것 빼고요. 그런데도 한국 문화에 흠뻑 빠졌죠.

평소 피부관리를 어떻게 하시나요?
피부관리를 처음에는 10단계로 했다가 요즘에는 5~6단계로 줄였어요. 피부관리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고 행복해요. 다양한 제품을 사용해 봤어요. 사람들이 제 피부가 밝고 빛난다면서 조언을 구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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