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손짓과 몸짓으로 방탄소년단 음악 전하는 ‘수어 아티스트’

후지모토 사오리: 한국 수어를 배워 마음을 전하는 일본 출신 방송인이 있다.
Hyeong Yun
Seoul, KR
9.4.21
방탄소년단 BTS 수어 수화 아티스트 청각 장애인
‘수어 아티스트’ 사오리가 이달 서울 강남구에서 VICE와 인터뷰 중에 수어로 ‘사랑해’를 표현하고 있다. 사진: 윤형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에는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공식 언어가 하나 더 있다. 수화언어(수어)다. 국어처럼 고유한 언어라는 점에서 ‘수화’ 대신 ‘수어’라고 한다. 수어는 2016년 청각 장애로 듣지 못하는 농인의 공용어로 인정받았다.

수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나라마다 다르다. 일례로 한국과 일본의 수어는 서로 다르다. 그런데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 수어를 배워 창작 활동을 하는 일본인이 있다. 일본 출신의 방송인이자 ‘수어 아티스트’ 후지모토 사오리다. 사오리는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한다. 지난해 7월 외국인 최초로 한국 수화 통역사 필기시험에 통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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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은 귀로 듣는 대신 수어라는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통하면서 ‘농문화’를 공유한다. 농인에 대비해 소리를 듣고 소통하는 사람을 청인(비장애인 포함)이라고 한다.

방송인 사오리의 또 다른 직업은 ‘수어 아티스트’다. 수화 통역사가 한국어를 수어로 번역해 전달한다면 수어 아티스트는 음악에 담긴 의미와 감정을 전하는 데 집중한다. 농인과 청인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감동과 위로를 주는 게 목표다.

사오리는 지난해 8월부터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히트곡을 수어와 안무로 표현한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BTS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노래 속에 철학과 메시지를 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경과 언어의 한계를 넘어 한국 수어 아티스트라는 꿈에 도전하고 있는 사오리.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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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아티스트’​ 사오리가 수어로 ‘아이 러브 유(I love you)’를 표현하고 있다. 사진: 윤형

VICE: 수어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어떤 일인가요?
후지모토 사오리:
수어 아티스트는 철학과 메시지가 담긴 음악을 수어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들이에요. 또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에요. 농인에게 음성 언어를 수어로 통역해 주는 수어 통역사와는 달라요. 예를 들어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코로나19 브리핑에 나오는 수어 통역사는 필수 생활 정보를 농인이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해요. 수어 아티스트는 콘텐츠로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죠.

수어 아티스트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유튜브 영상은 대부분 청인 중심이에요. 아니면 오디오 없는 농인 중심의 콘텐츠죠. 하지만 농인과 청인의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없더라고요.

제 영상은 노래를 수어로 통역한 게 아니에요. 가수의 춤을 따라 한 커버댄스는 더 아니고요. 노래를 듣고 느끼는 감정과 박자를 안무로 표현해 모두가 느낄 수 있게 하는 거죠. 한마디로 한국 수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 퍼포먼스를 만드는 작업에 가까워요.

BTS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음악 속에 철학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노래에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 가사를 듣다 보면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죠. 팬들은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일일이 곱씹고 내용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감상하잖아요. 그래서 BTS 노래를 수어 노래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BTS가 부른 ‘온(ON)’을 첫 번째 노래로 택한 이유가 있나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스크림(scream)”이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어요. 고통과 시련이 찾아와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는 내용을 담은 가사에요. 저한테 딱 맞는 노래라고 생각했어요. ‘온’은 박자가 엄청 빠른 노래라 수어로 가사 뜻을 모두 정확히 전달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도 보신 농인분들이 재밌고 새롭다고 말씀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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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엔 BTS 노래를 제 방식대로 해석해 보여주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의외로 BTS 팬 아미(ARMY)분들께서 수어로 보여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해외 팬 중 한 분은 “가족 중에 청각장애인이 있는데 활동해줘서 고맙다”며 유튜브 댓글을 남겼어요. 트위터에서는 해시태그 #deafarmy와 함께 공유됐어요.

영상을 만들 때 표정에 특별히 신경을 써요. ‘온’ 영상에서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고, ‘다이너마이트’ 영상에서는 밝은 표정을 지었어요. 한국어를 모르는 일본 분이 춤출 때 표정을 보고 곡의 느낌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메시지를 주셨어요.

안무는 직접 짜는 건가요? 
수어 동작을 활용해 안무를 직접 창작해요. 안무에 가사의 뜻도 담지만 번역하기보다 음악을 느낀 그대로 해석하고 감정을 녹여 안무를 짜요.

수어는 표정이나 몸의 방향, 손바닥 방향에 따라 다른 의미를 표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수어로 ‘엄마’를 언급한 뒤에 몸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유지하면 이 말의 주어가 계속 엄마가 되죠. 또 몸의 방향을 왼쪽으로 유지하면 아들이 주어가 되죠. 시선을 두는 방향에 따라서도 뜻이 달라져요.

한국 수어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뭔가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홍보대사 일본대표로 한국과 올림픽을 소개하는 활동을 했어요. 성화봉송에 참여하고 선수단을 인터뷰해서 일본에 전하는 기사를 썼어요. 당시에 패럴림픽을 보면서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현장에서 수어로 통역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수어로 소통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생각에 무척 설렜죠. 한국에 살면서 한국 수어를 배우면 많은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국 수어 필기시험에 외국인 최초로 통과했다고요?
시험 전 한두 달은 하루 열두시간씩 공부했어요. 이렇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죠.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수업도 들었어요. 수어 통역사 필기시험 통과를 위해 ‘장애인 복지’, ‘청각장애의 이해’와 9급 공무원 국어 시험 수준인 한국어도 공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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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필기시험을 2019년 7월에 치렀는데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어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시험이라 더 아쉬웠죠.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집 주변 독서실이 문을 닫더라고요. 그래서 독서실 책상을 구매해 집을 독서실처럼 꾸며 공부했어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간혹 방송 제의도 들어왔지만 공부를 우선순위로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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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사오리가 구매한 독서실 책상. 사진: 본인 제공

원래 꿈은 뭐였나요?
2012년부터 일본에서 직장을 6년간 다녔어요. 한국 연예기획사의 일본 지사에서 아티스트, 팬 마케팅 업무를 맡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하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부모님이 방송인 꿈을 크게 반대하셨죠. 그래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직원이 된 거죠. 옆에서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계속 지켜봤어요. 또래들이 남에게 행복과 감동을 주는 모습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어요. 이들을 보조하는 역할도 의미 있지만 직접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죠. 좀 늦은 나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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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아티스트’​ 사오리가 방탄소년단의 ‘온’(왼쪽)과 ‘다이너마이트’를 수어 퍼포먼스로 선보이고 있다.

수어 아티스트로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수어에는 ‘문장식 수어’와 ‘농식 수어’가 있어요. 문장식 수어는 한국어 문장을 수어와 일대일로 대응해 전달하는 방식인데 수어 통역사 시험이나 방송 수어에서 쓰여요. 반면 농인이 일상에서 쓰는 농식 수어의 어순과 문법 체계는 한국어와 완전히 달라요. 농식 수어 실력이 완벽하지 않다 보니까 노래를 전달하기 어려워요.

앞으로 사오리가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앞으로 언어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 만들고 싶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어 노래에 담긴 감정이나 뜻을 느끼게 하는 게 목표예요. 많은 분이 콘텐츠를 보고 힘과 위로를 얻고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또 정말 큰 꿈이지만 한국 수어를 널리 알리는 문화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싶어요.

Hyeong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