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명씨는 올해 29세로 서울과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자유기고가다.
2017년 여름, 독일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아직 낯설 무렵에 어학원 친구들과 함께 베를린 중심에 있는 티어가르텐 공원으로 산책을 떠났다. 공원에 들어서자 큰 규모에 방향감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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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걷다 보니 느닷없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속옷도 없이 속살을 드러낸 사람들을 보고 무척 놀랐다. 마치 죄를 지은 듯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나중에야 호기심에 검색해 보니 그곳은 국가가 지정한 에프카카(FKK) 구역이었다. FKK는 ‘자유로운 몸의 문화’라는 뜻이다. 옷을 입지 않은 채로 자유를 누리겠다는 문화이자 운동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도 종종 FKK 구역을 지나쳤는데 용기가 부족해 들어가진 못했다.
2019년 여름, 햇볕이 내리쬐던 주말 오전이었다. 오스트리아인 친구의 즉흥 제안으로 베를린에 나체주의자들이 모이는 호수 공원 하버만제로 설렘과 긴장을 안고 향했다.
호수 공원은 정오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북적였다. 호숫가로 향하는 길에는 커다란 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무 사이에서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나들이를 즐기는 모습을 바라봤다. 기대와 달리 나체주의에 관한 안내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호수 공원과 같았다. 사람들이 속옷마저 벗고 몸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만 달랐다.
여유 있게 만찬을 즐기는 가족부터 밀짚모자로 얼굴만 가린 채 일광욕을 즐기는 중년 커플, 검은색 선글라스 하나만 쓴 채로 서프보드 위에 올라서 열심히 노를 젓는 아이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옷을 벗고 화창한 날씨를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옷을 벗지 않은 사람도 있었는데 눈에 띌 정도로 많진 않았다. 대부분 옷을 벗는 과정이었거나 필요에 따라 옷을 잠시 입은 듯 했다.
이미 그런 공원이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적응을 핑계로 사람이 드문 곳에 자릴 잡았다. 그런데 나와 반대로 이런 문화가 익숙했던 친구는 자릴 잡자마자 옷과 속옷을 전부 벗어 던지고 벗은 몸을 드러냈다. 친구를 보고 눈치를 보며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속옷을 겨우 벗었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여태껏 공공장소에서는 옷을 벗으면 안 된다고 배워 불편한 마음이었다. 실제 한국에서는 형법 제245조(공연음란)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과도한 신체 노출이 ‘공연히 음란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다른 이들은 편안해 보였다. 대부분이 각자 시간을 즐기면서도 낯선 이에게 인사를 건넬 만큼 여유로웠다. 주변의 영향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이 모두가 벗고 있으니 모두가 평등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평소 미디어에서 보던 전형적인 몸이 아닌 자연스러운 몸을 보니 이질감도 들지 않았다.
솔직히 전에는 벗은 몸을 주로 성적으로 여겼다. 편협한 생각은 그렇게 산산이 깨졌다.
솔직히 전에는 벗은 몸을 주로 성적으로 여겼다. 편협한 생각은 그렇게 산산이 깨졌다.
나체로 있으니 수영하기에도 한결 편했다. 모래사장에서 맨몸으로 누워 있다가 뜨거운 햇볕에 밀려 물속으로 점차 빠져들었다. 물에 몸을 담그는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호수로 걸어가면 됐다. 옷을 벗거나 갈아입을 필요가 없었다. 수영복을 사서 입을 필요도 없고 젖은 옷가지를 되가져가는 성가신 과정도 필요 없었다.
알몸으로 호수에 들어가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라 알몸으로 수영을 자주 즐겼다. ‘그 후 20년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몸을 꽁꽁 싸매고 살았나.’ 반나절이 넘게 수영과 일광욕을 반복했다. 나체로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로.
옷과 함께 그동안의 가식도 벗어낸 것 같았다. 오히려 옷을 입었을 때보다 몸을 덜 의식했다. 사실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은 신체를 바라보거나 보여주는 과정에서 생기지 않았다. 타인의 신체를 과도히 성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비교하면서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
옷과 함께 가식도 벗어낸 것 같았다. 오히려 옷을 입었을 때보다 신체를 덜 의식했다.
나체주의는 이뿐 아니라 또 다른 교훈도 줬다. 세상에 완벽한 몸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 미디어에서만 보던 완벽한 기준에 맞춰진 몸, 성적으로 대상화가 된 자극적인 신체. 세상 사람의 몸은 꼭 그렇지 않다고, 꼭 그럴 필요도 없다고 피부로 느꼈다.
모든 사람이 나체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패션이나 안전을 이유로 옷을 입는 것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본인의 결정이다. 단지 모든 인간은 벗은 채 태어나는 것처럼 알몸이 생각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도 공공장소에서 옷을 입어야 한다. 하지만 신체에 대한 자유(혹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를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또 그건 문화가 됐다.
호수에서 귀가하는 길에 친구에게 말했다. 사실 나체주의 문화가 서양인의 문화라고 느껴져 아직 어색하고 아쉬웠다고. 친구는 “아시아인이 더 오면 되겠네”라고 답했다.
나체주의는 그저 먼 나라 미지의 문화였다. 나체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지던 내가 이젠 여름이면 항상 누드 비치를 찾는다. 노출증이나 관음증이 있냐고 묻는다면 내게 나체주의는 시선을 끌기 위해서가 아닌 ‘오롯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답하고 싶다.
일단 벗으면 모든 게 편해진다. 신경 쓸 게 없으니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햇빛과 바람을 온전히 즐기는 거다. 수영복 자국이 남지 않는 태닝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일단 벗으면 모든 게 편해진다. 신경 쓸 게 없고 거슬리는 게 없으니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햇빛과 바람을 온전히 즐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