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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하늘씨가 지난달 경기 의왕시 계원예술대학에서 직접 제작한 ‘마스크 의자 앞에 두고 미소를 짓고 있다모든 사진이준석
Art

버려지는 마스크 모아 의자 제작하는 20대 청년

이 청년은 버려지는 마스크 1500장을 열풍기로 녹여서 의자를 만든다.
Hyeong Yun
Seoul, KR

‘플라스틱 재활용은 누구나 얘기하는데 왜 마스크 재활용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을까?’

한 청년은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일회용 마스크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같은 플라스틱 소재니까 재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변화는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궁금증을 끝까지 붙잡은 결과가 ‘마스크 의자’다. ‘마스크 의자’는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마스크나 마스크 공장에서 나온 자투리 원단을 녹여 만든 재활용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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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의자’를 개발한 김하늘씨(24)를 지난달 경기 의왕시 계원예술대에서 만났다. 그에게 의자를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물었다. 만드는 과정도 자세히 들었다. 하늘씨는 지난달 계원예술대 리빙디자인학과를 졸업해 디자이너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VICE: 어떻게 마스크로 의자를 만들 생각을 했나요?
김하늘:
친구가 지난해 코로나19에 감염된 걸 보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그러고 나서 신문기사를 읽었는데 코로나19로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마스크가 플라스틱 소재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하지만 마스크를 재활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무작정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해봤죠. ‘난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마스크를 재료로 가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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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녹여 만든 재활용 의자. 사진: 이준석

마스크로 의자 만드는 방법은 어떻게 알았나요?
요리할 땐 레시피를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마스크로 의자를 만들 땐 따라할 만한 매뉴얼이 없었어요.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으니까 그냥 해봐야 아는 거죠. 친구 자취방에서 캔맥주를 마시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캔을 가로로 잘라 그 안에 마스크를 넣고 열풍기로 녹여봤어요. 그랬더니 마스크가 딱 생각했던 느낌대로 녹는 거예요. 식히고 나서 확인해보니까 굉장히 단단하게 굳어 있었어요. 질감까지 예뻐서 ‘이거면 의자를 만들 수 있겠다’고 싶었죠.

마스크가 의자가 되는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나요?
캔을 가로로 잘라 썼던 원리를 그대로 가져왔어요. 캔을 도려내면 위에만 뚫려 있잖아요. 거기에 마스크를 넣어 녹이면 동그란 모양 그대로 굳겠죠. 마찬가지로 의자 모양 틀을 만들었어요. 나무판을 의자 모양대로 도려냈어요. 그렇게 위에만 개방된 틀을 만들었어요. 틀 안에 마스크를 넣고 열풍기로 녹이면 의자 모양대로 굳는 거죠.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의자가 100% 재활용한 의자라는 거예요. 보통 의자는 좌판이랑 다리를 결합해 만들어요. 둘을 연결할 때 고정 나사나 접착제를 써요. 그 대신 마스크를 녹여 이어 붙였어요. 앉는 부분과 다리뿐 아니라 연결 부분까지 재활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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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씨가 직접 만든 마스크 의자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이준석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마스크를 모으는 일이 가장 어려웠어요. 의자 하나를 만들 때 마스크 1500장 정도가 필요해요. 처음엔 테스트용만 만들다 보니까 마스크가 많이 안 필요했어요. 제가 쓴 마스크랑 친구들이 쓴 마스크를 모으니까 100여장 정도 되더라고요. 그런데 의자를 계속 만들다 보니까 마스크가 부족했어요. 처음엔 친구의 친구까지 동원했어요. 그러다 교내에 마스크 수거함을 설치했어요. 제일 많이 수거했던 날은 하루에 150장까지 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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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스크를 모으다가 마스크 공장에서 버리는 자투리 원단을 받게 됐어요.

한 여성분이 인스타그램으로 마스크 자투리 원단을 주겠다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아버지가 마스크 공장을 운영하는데 마스크 자투리 원단 처리가 골칫덩이라고요. 매달 1t 물탱크 크기만한 자투리가 쌓인대요. 현장으로 찾아가 보니 기계가 2대뿐인 작은 규모의 공장이더라고요. 그런데도 쓰레기가 많이 발생했던 거죠.

짐작건대 규모가 더 큰 마스크 공장에선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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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 마스크 자투리 원단이 쌓여있다. 사진: 이준석

자투리 원단을 썼을 때와 수거한 마스크를 쓸 때 차이점이 있나요?
자투리 원단은 누가 썼던 마스크가 아니라 코로나19 2차 감염 위험을 우려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어요. 마스크는 보통 천과 필터, 귀에 거는 끈으로 이뤄져 있어요. 그런데 이걸 따로 분리할 필요도 없었죠. 그래서 분리에 드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었죠.

코로나19나 환경호르몬 때문에 위험하지 않을까요?
수거한 마스크는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프랑스 플라스틱 재활용 스타트업 ‘플락스틸’의 매뉴얼을 참고해 일정 기간 보관한 뒤에 사용했어요. 작업할 때는 방역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을 착용했어요. 마스크 소독은 열풍을 통해서 했죠. 

또 마스크를 녹이면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느냐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마스크의 원료 플라스틱은 폴리프로필렌이에요. 흔히 볼 수 있는 일회용 마스크나 KF94 마스크가 다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져요. 플라스틱 중에서도 재활용이 많이 되는 소재이고 가장 안전하게 열분해되는 소재예요. 아이들이 입으로 빠는 젖병도 보통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다고 알고 있는데 젖병은 끓는 물속에서 한참 소독해서 쓰잖아요.

그런 것처럼 플라스틱에 열을 가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위험한 건 아니에요.

원래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원래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고 목소리 내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쓰레기 분리배출을 꼼꼼히 하는 정도였죠. 처음엔 버려지는 마스크가 얼마나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지도 잘 몰랐어요. 또 얼마나 많이 버려지는지도 잘 몰랐죠. 폐마스크로 의자를 만들면서 관심을 받다 보니 환경에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의자 색깔이 다양하던데요?
우리가 쓰는 마스크 색깔도 다양하잖아요. 보통 마스크는 하얀색이랑 검은색이 많아요. 그래서 만든 의자도 하얀색 의자가 제일 많아요. 수술용 마스크는 파란색, 분홍색도 있잖아요. 그런데 분홍색은 수집이 쉽지 않아서 분홍색 의자는 아직 하나밖에 못 만들었어요. 여러 색깔의 마스크를 섞어 알록달록한 색깔의 의자도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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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아 올린 마스크 의자. 김하늘 씨는 이 의자에 '스택앤스택(Stack and Stack)'이라고 이름 붙였다. 사진: 이준석

의자 다리가 3개뿐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의자 다리는 4개일 수도 있고 5개일 수도 있어요. 숫자는 상관없어요. 그런데 애초에 재활용이라는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에 다리를 많이 만드는 게 낭비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걸 최소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리 수를 3개로 정하고 등받이를 없앴어요. 다리와 좌판으로만 디자인했어요.

전시회가 온라인으로 열렸다면서요?
가장 큰 학교 행사가 졸업 작품 전시회예요. 이 행사를 위해 거의 1년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계속 유행하면서 오프라인 전시회가 결국 취소되고 온라인 전시로 바뀌었어요.

의자를 딱 완성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스스로 기특했어요. 평소엔 목재를 주로 다뤄서 플라스틱 재료로 가구를 만드는 건 낯설었어요.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다른 친구들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편이 아니었고요. 하지만 색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죠. 의자를 만들 땐 사흘 밤을 꼴딱 새운 적도 있어요. 조금씩 나눠 작업하는 것보다 오래 쉬더라도 한 번에 길게 해야 결과물이 잘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밤새워서 만든 걸 누구에게 보여주면 희열을 느껴요.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대학 입학할 때부터 가구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이번에 의자를 만들면서 아름답고 실용성 있는 작품도 좋지만 작품이 공익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가구는 공원 벤치처럼 실용적인 물건일 뿐 아니라 예술 작품이 될 수도 있고요. 또 환경보호와 같은 공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수단이 될 수도 있어요. 아름다움과 실용성, 메시지 모두를 잡으려고 하는 게 욕심은 아닐까 걱정도 돼요. 하지만 지금은 꼭 방향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맘껏 만들어 실현해 보고 싶어요.

Hyeong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