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던 1980년. 프랑스 파리에서 모델 일을 했다. 인기 모델까지는 아니었지만 1년을 활동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갔다. 그러다가 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기반을 쌓았다. 고된 노력 후에 얻은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그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다지 만족한다거나 삶이 보람차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 시점에 연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모델 에이전트가 늦여름 어느 날 주말 모나코의 몬테카를로로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항공권과 호텔 비용을 물었더니 무료라고 했다. 모델계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지만 그때는 휴가가 너무 간절했던 터라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호텔에 도착한 후 비싼 술을 마시며 경치를 감상했다. 그렇게 꼴딱 반나절이 지났다. 그날 저녁 에이전트가 리무진에 태우더니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열린 해적 테마 파티로 데려갔다.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성대한 야외 행사였다. 파티를 즐기던 중 나이 든 남성 한 명이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말하면 좀 변태 같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와 모래사장으로 나가 춤을 췄다.
그는 모닥불이 맹렬히 타오를 때 갑자기 그 속으로 샴페인 잔과 의자를 던졌다. 그러고 나서 커다란 파티용 식탁에 날 앉혔다. 그는 눈을 바라보다 내 소매를 걷어 팔뚝을 드러내더니 거기에 자신의 피로 ‘사랑해’라고 적었다. 잔을 불 속으로 던지다가 손을 벴던 것 같다. 그에게로 점차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모닥불이 맹렬히 타오를 때 갑자기 그 속으로 샴페인 잔과 의자를 던졌다. 그러고 나서 커다란 파티용 식탁에 날 앉혔다. 그는 눈을 바라보다 내 소매를 걷어 팔뚝을 드러내더니 거기에 자신의 피로 ‘사랑해’라고 적었다. 잔을 불 속으로 던지다가 손을 벴던 것 같다. 그에게로 점차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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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야 그가 세계적 갑부이자 전설적 무기 상인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아드난 카쇼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사업을 여러 개 지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부동산과 저택을 보유했다. 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세기와 요트 ‘나빌라’를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했다.80년에는 인터넷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누군지 알아내려 구글에 검색해 보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무작정 뛰어들어 스스로 하나둘 조각을 맞춰 나갔다. 그 과정에서 억만장자와 연애하는 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멋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다음 날에도 아드난을 만났다. 몇 주가 지나고 스페인으로 초대받았다. 그때 아내 중 한 명이 돼 달라는 고백을 받았다. 머뭇거렸지만 승낙했다. 그렇게 ‘그들이 사는 세계’의 일부가 됐다.처음엔 넘치는 돈이 새롭고 이상했다. 또 흥미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하게 느껴졌다. 케냐에서 아드난에게 20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 받았을 때 만해도 분에 넘치는 것 같아 거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이 달고 다니는 값비싼 보석을 계속 보다 보니 결국 원하게 됐다.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저녁 식사 때 착용했다. 요리사가 준비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었다. 기사를 대동해 리무진과 전세기로 이곳저곳을 다녔다.차츰 그와 따로 있을 때조차 이런 삶을 원했다. 모델로 일하며 로스앤젤레스의 집에 있을 때도 고급 식당에 가야하는 적당한 변명을 만들었다. 웨이터가 하얀 유니폼을 입은 채 시중을 들고 하얀 식탁보가 깔린 고급 식당에 가고 싶었다. 상류층처럼 명품 옷을 입고 은은한 조명 아래 촛불이 일렁이는 곳에 가고 싶었다. 그동안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친한 친구와 시간을 보낼 때에도 상류층의 생활이 그리웠다.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돈
불안과 불만족의 씨앗이었던 돈
언제나 뭔가를 원했던 주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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