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맨사 리(Samantha Lee)는 필리핀의 영화감독 겸 작가다. 그는 필리핀에서 영화 ‘바카 부카스(아마도 내일)’와 ‘빌리와 에마’로 여러 상을 받았다. 일본 오사카 아시아영화제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프레임라인영화제 같은 국제 영화제에도 진출했다.
호주 멜버른 9월의 어느 밤, 클럽에서 놀다가 한 여자의 손을 붙잡고 걸어 나왔다. 그저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아무도 우릴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음이 편했다. 이곳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레즈비언이 더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뭔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난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영화에 나와 비슷한 인물을 등장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고향인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2016년 1월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내 첫 영화인 ‘바카 부카스’를 공개했다. 이 영화는 내 이야기가 담긴 자전적 영화다. 영화 속 20대 알렉스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흠뻑 빠졌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알렉스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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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퀴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게이여도 괜찮다’라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고 싶었다. 유명 여배우가 여성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건 다른 나라에선 사소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필리핀 같이 보수적인 나라에서는 파격적인 일이다.
필리핀에서 최근 발생한 사건들을 보면, LGBTQ 커뮤니티를 향한 오해와 혐오, 편견은 여전히 심각하다. 우리의 존재는 인정을 받지만 수용을 받지는 못한다.
학창 시절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여고에 다녔다. 당시 도덕 수업은 필수였다. 도덕 선생님은 매우 엄격했다. 난 수업 시간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항상 긴장해야 했다. 마음속에선 ‘바보야, 이게 진짜 나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론 정체성을 부정했다. 선생님은 게이가 죄는 아니지만,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건 죄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여자랑 데이트하거나 키스하거나 손을 잡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런 행동만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난 내가 퀴어이고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게이가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긴 머리를 하고 드레스를 입었다. 남자들과 만나보기도 했다. 멜버른으로 유학 가기 전인 23세가 돼서야 부모님에게 고백했다. 여자를 좋아한다고. 그 해에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또 여자와 처음으로 키스했다.
종교와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일이 많았다. 내가 정말 누구인지 살피고 알 필요가 있었다. 멜버른으로 이사하고 처음으로 나답게 옷을 입었다. 나답게 말을 했다. 또 나와 비슷한 여자들과 어울렸다. 레즈비언 여성을 많이 만나 보니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괜찮다고 느껴졌다. 내가 나 자신이 편할 때 ‘이제 영화를 만들어도 좋아’라고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멜버른에선 멋진 삶을 살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안정된 직장이 있었다. 저수지 근처에 살아서 일이 끝나면 집 주변에서 조깅을 했다. 또 캥거루를 보러 가기도 했다. 사회생활도 활발히 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도 즐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마닐라에서는 이렇게 살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필리핀 미디어는 여러 유명인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중에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은 없었다. 내가 아는 ‘나’라는 사람과 영화가 묘사하는 레즈비언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영화 속 레즈비언은 항상 남자 같다. 그래서 미디어에서 나오는 레즈비언과 내 정체성을 연결하기 힘들었다.
게이가 영화를 통해 사회에서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모두 희망과 공포, 긴장을 경험한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같은 시스젠더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미디어는 우리의 차이점만 부각한다. 만약 미디어가 계속해서 LGBTQ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필리핀은 살기 더 안전한 곳이 될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특히 더 강력하다. 영화제작자로서 나의 목표는 사람들이 사회의 진짜 모습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 것, 게이여도 괜찮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냥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겠지만, 극장을 떠날 때 게이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것이다. ‘바카 부카스’가 개봉하고 많은 사람이 내게 편지로 영화 덕분에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부모님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정말 제대로 하고 싶었다. 난 단지 한 명일뿐이다. 그래서 사회 전체의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했다. 동성애 영화를 만들려는 다음 사람이 지금보다 99% 더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가능한 많은 장애물을 제거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본 기사의 출처는 VICE Asia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