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년을 맞이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축하하며
사진 이강혁
Culture

23주년을 맞이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축하하며

지난 2019년, i-D가 즐겁고 도전적인 참가자들을 만나 한국에서 성소수자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JO
translated by Joan Oh
JJ
translated by Jang Jaehyuk
KS
translated by Kim Sangtae

지난 2019년, 5월 말부터 2주간 진행된 제 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는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 영화제, 강연 등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했다. 특히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는 ‘제 20회 권리 투쟁’이라는 구호 아래 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한자리에 모였다.

약 8만여 명의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와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성소수자의 평등권을 요구하는 가운데 코리아 헤럴드(The Korea Herald는 “한국 최대의 프라이드 퍼레이드로 수만 명이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고 보도했다. ‘성소수자가 여전히 사회 변두리로 밀려나는 나라’에서 말이다.

서울 최초의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2000년 첫 선을 보였고 약 50여 명이 모였다. ‘동성애는 죄’ 혹은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다.’라고 외치는 수천 명의 성소수자 반대 시위자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2019년의 퍼레이드는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대표성과 인식을 위한 큰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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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는 당시 역사적인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가한 즐겁고 도전적인 참가자들과 만나 한국에서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seoul queer festival 2019

상화(Sanghwa), 24세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지금은 휴학생이지만 올해 초까지 대학생 단체에서 성소수자 활동가로 일했다. 서강대학교 성소수자해방연대 ‘댄싱퀴어스(Dancing Queers)’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활동을 통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1년간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LGBTQ) 학생회 회장을 역임했다. 

나는 교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대해 성소수자 학생들의 정치적 의지를 옹호하는 학교 중앙위원회의 일원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캠퍼스 내의 성소수자들에게 안전한 커뮤니티와 쉼터를 제공하고 그들을 대신해 교내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학교와 협의하기도 했다. 또한 세미나나 학교 행사를 개최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혹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학생들의 존재에 대한 정보를 학교와 여타 학생들(성소수자가 아닌)에게 제공했다. 올 4월에 2년 동안의 짧은 성소수자 활동가로서의 임기를 마쳤다.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쉬고 있다. 그간 지쳐있던 건강과 정신을 돌볼 계획이다. 활동이 끝난 뒤 학교를 휴학한 것은 큰 결정이었다. 

seoul queer festival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세상에 나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퍼레이드에 입을 의상 콘셉트를 미리 구상해 두었다.  평소에는 이렇게 입지 않아서 사람들이 쳐다봤을 때 약간의 설렘을 느꼈다. 친구가 나를 보고 “오늘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안경을 쓰고 화장도 안 하더니, 인형처럼 예뻐 보이려면 성소수자 축제 같은 것들이 필요하겠다.”라고 하더라. 평소에 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외부로 표현하고 싶은 것 같다. 어쩌면 이번 성소수자 퍼레이드 행사의 취지에 맞게 나를 지나치게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마치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처럼 군중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성소수자 퍼레이드에서는 그간 숨어 지냈던 성소수자들이 한데 모여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목소리를 낸다. “내가 여기 있어. 우리를 좀 봐. 우리가 성소수자야.”라고 말이다.

bambie seoul queer

밤비(Bambie), 34세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네온밀크(NEONMILK)의 대표를 맡고 있다. 네온밀크는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성소수자 문화 창작 레이블이다. 김치(Kim Chi), 나오미 스몰스(Naomi Smalls), 바이올렛 챠츠키(Violet Chachki) 같은 세계적인 드래그 퀸들의 공연을 한국에 선보이고 있다. 그 외에 성소수자 관련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잡지, 유튜브(YouTube) 쇼, 전시회 를 비롯한 여러 채널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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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queer festival

성소수자 퍼레이드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드랙의 성격상 주로 밤 문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십대나 미성년자 관객을 수용할 수 없는 게 항상 아쉬웠다. 이번 축제를 통해 더 많은 관객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퀴어 축제가 본인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외치는 드랙 문화의 마인드가 획일성을 강요하는 한국 교육제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성소수자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사람들이 인생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 받기를 바란다. 

seoul queer festival

김도겸(Kim Doh-kyum), 23세, 무용수

성소수자 퍼레이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살면서 만난 성소수자 친구들을 응원하고 축제에 즐겁게 참여하는 일반 대중과도 함께하기 위해서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존중하거나 이해하려는 움직임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보통은 편견과 차별에 무시당하고 억압받기 마련이지 않은가. 이를 막고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 오늘 이렇게 꾸미고 나왔다. 

성소수자 퍼레이드가 본인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세상의 압력으로 나보다 더 고통받는 성소수자 친구들의 다양성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겐 매우 의미 있는 행사다. 성적 다양성(Queerness)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우리는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축제가 정말 중요하다.

seoul queer festival

선형(Sun-hyung), 20세

성소수자 퍼레이드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온갖 차별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나의 지지와 존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오늘  퍼레이드에 참가하게 됐다. 

성소수자 퍼레이드가 본인에게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 문화에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나 취향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공개적으로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자신 있게 세상에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퀴어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자부심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Seoul queer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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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s


Photography 이강혁
Text 섀럴 산토스
Translation 조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