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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처럼 친밀하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 ASMR 콘텐츠

“ASMR을 듣고 명상할 때와 비슷한 의식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이 많다”고 캐나다 위니펙대학 심리학과 스티븐 스미스 박사가 설명했다.
유튜버 asmr 콘텐츠

“언제 마지막으로 각질 제거했어?” 가장 친한 친구인 에이미가 속삭인다.

지금 에이미가 영국 에섹스에서 운영하는 미용 살롱에 있다. 스페인의 마르베야로 휴가를 떠나기 전 태닝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에이미가 각질 제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화가 난 상황이다. 눈을 부라리면서 옷을 벗으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에이미가 장갑을 낀 손으로 다리를 문지르기 시작한다. 솔질을 하고 가볍게 때리면서 매만진다.

사실 살롱에서 각질 제거를 하던 중이 아니었다. 또 에이미는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다. 에식스에 있었던 것도 살롱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집에 있었다. 혼자 방 안에서 역할극이 가미된 유튜브 에이에스엠알(ASMR·자율감각쾌락반응)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영상에서 나오는 생생한 소리를 들으면서 실제 상황을 상상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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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R은 최근 유행하는 용어다. 사실 이 용어는 2010년에 탄생했다. 특정한 소리에 노출됐을 때 두피와 척추에 느껴지는 간지러운 느낌을 가리킨다. 속삭이는 소리, 톡톡 두드리는 소리, 쓱싹쓱싹하는 소리, 긁는 소리. 일부 청취자들은 이런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물론 일부는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한다.

ASMR과 연관된 과학적인 연구는 거의 없다. 하지만 ASMR 애호가들은 이런 소리가 스트레스와 불안 증상을 완화한다고 믿는다. 동시에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런 선호가 이상한 성적 취향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캐나다 위니펙 대학 심리학과 스티븐 스미스 박사는 “ASMR 소리를 듣고 명상할 때와 비슷한 의식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스미스 박사는 감각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그는 “사람들은 ASMR을 휴식하거나 잠잘 때 시청한다”며 “영상이 즐겁고 차분한 기분을 느끼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가벼운 불안장애를 겪는 환자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분야의 사업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튜브에 ASMR을 검색하면 9900만개가 넘는 영상이 나온다. 수많은 ASMR 아티스트들은 유튜브에 콘텐츠를 제공한다. 예컨대 숨소리, 속삭임, 입맛 다시는 소리, 부드럽게 두드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ASMR 콘텐츠는 가벼운 것부터 극단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ASMR 창작자는 점점 특이한 영상을 만들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튀어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가벼운 영상으론 ASMR 치과 진료, 뇌신경 검사, 머리카락 속에서 이를 검사하는 영상이 있다. 부검을 경험하거나 칼에 찔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극단적인 영상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다. 유튜브 영상 ‘에이미 살롱’은 태닝하거나 각질을 제거하는 소리와 같이 일상의 소리와 대화에 초점을 맞춘다. 가상의 관계를 ASMR과 결합해 더 깊고 몰입감이 넘치는 관계를 쌓는 것에 목적을 둔다.

이런 영상을 만들어 수입을 얻는 ASMR 창작자는 수천명에 달한다. 에이미의 살롱 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 ‘크리에이티브 캄 ASMR(Creative Calm ASMR)’의 루시 클라우트가 대표적이다. 클라우트는 27세로 영국 도싯 출신이다. ASMR 콘텐츠 제작이 본업이다. 유튜버 생활로 생계를 유지한다. 13일 기준으로 구독자는 282만명에 달한다. 올린 영상은 300개가 넘는다. 이 중 대다수는 일상의 소재를 바탕으로 만든 콘텐츠다. 대표적으로 ‘친근한 양복점’과 ‘매니큐어와 가십’ 등이 있다.

조회 수가 백만회 이상인 클라우트의 최고 인기 영상 중 하나는 ‘달콤한 영국 여자친구(British Sweet Girlfriend)’다. 그는 영상에서 실제 애인이 하듯이 부드럽게 속삭여준다. 시청자들에게 하루가 어땠는지 친밀하게 물어보기도 한다. 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좋아요'를 누른 이 영상의 최고 인기 댓글은 ‘모든 외로운 사람에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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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튜버는 구독자들을 다정하게 대한다. 구독자와 더 친해지고 싶어 한다. 클라우트는 이 일의 가장 큰 보람을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이런 말도 곁들였다. “수개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제 콘텐츠를 보고 도움을 받았다면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낼 때 기분이 정말 최고예요.”

유튜브 채널 ‘프레드의 보이스 ASMR(Fred’s Voice ASMR)’의 프레드도 이런 ASMR 콘텐츠를 만든다(본인의 성을 밝히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클라우트처럼 다정하게 다가가는 영상은 아니다. 29세 ASMR 창작자인 프레드는 노트북 청소에서부터 신발 청소까지 일상에서 들리는 소리를 주로 영상으로 만든다. 영국 켄트에서 살면서 유튜버로 일과 연기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현재 구독자 수는 54만명이 넘는다.

프레드는 “재밌는 ASMR 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며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에 내가 등장하는 것처럼 느낀다”고 설명했다. 또 “야외에서 영상을 촬영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다양한 영상을 제공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편안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영상이 위안이 된다는 의미다.

겉보기엔 평범한 ASMR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있을까. 스미스 박사는 “ASMR 창작자들은 이미 길들인 고정 팬들이 있고 이들은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도 몰린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래서 정기적으로 내용이 알찬 콘텐츠를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중요한 건 팬층을 형성하는 것과 구독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란 뜻이다.

스미스 박사는 “ASMR 시장이 다소 포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010년 이 영상이 처음 인기였을 때 ASMR 콘텐츠 창작자는 몇 명 안 됐어요. 그런데 이젠 수천 명이에요. 유튜버라면 주목을 받아서 더 큰돈을 벌고 싶어 하죠. ASMR 콘텐츠를 만들면 인기를 끌 수 있는 이점이 있어요. 그래서 일부는 독특한 역할극을 하기도 해요.”

프레드의 채널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 이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클라우트와 마찬가지로 프레드도 자신의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에 기뻐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친밀감을 쌓을 계획이다.

프레드는 “몇몇 구독자들이 매일 밤 내 영상을 보면서 잠든다고 말해준다”고 고마워했다. 그는 “제가 만든 영상들이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마음이 따뜻해질 수밖에 없다”고 뿌듯해했다.

“녹음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구독자와 특별한 관계가 되는 기분이에요. ASMR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dominiquesis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