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와도 괜찮아, 빗속에서 춤을!’ 무지개로 다시 물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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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3년 만에 ‘무지개 물결’로 뒤덮였다. 한국 최대 규모의 연례 성소수자(LBGTQ) 축제 서울퀴어문화축제(SQCF)가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렸다. 2000년부터 이어진 축제가 코로나19로 온라인 위주로 열리다가 마침내 거리로 다시 돌아온 거다.

많은 한국의 성소수자와 연대자는 이날 퍼레이드(행진) 때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 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보다 비를 맞으면서 춤을 추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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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다. 사진: 이강혁

올해 슬로건은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다. SQCF 조직위원회 추산 13만5000명은 이날 잔디밭에서 춤을 추거나 여유를 즐겼다. 또 부스를 구경하거나 사진을 촬영했다. 케이팝 역사상 최초의 성소수자 보이그룹 라이오네시스의 공연을 비롯해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성소수자부모모임, 주한 외국 대사의 연설도 보고 들었다.

“곳곳에 다양한 색깔이 보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 괜찮은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양선우 SQCF 조직위원장)축제를 지지하는 참가자 중에선 스님과 수녀 같은 종교인뿐 아니라 정치인과 활동가, 예술인, 외국인, 노인, 청소년, 대사도 있었다. 이들은 축제를 즐기며 연대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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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참가자가 머리카락으로 무지개 깃발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 이강혁

특히 신임 미국 대사가 주목받았다. 일부 보수·기독교단체는 ‘대북 강경파’라는 평가를 받는 필립 골드버그 대사가 부임도 전부터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지난 10일 한국에 도착한 골드버그 대사는 축제 무대에 올라 “평등과 인권을 위해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며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끝내고 모든 사람이 존중과 인간애로 대우받도록 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려고 행사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또 트위터에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축제 반대 시위자들은 비슷한 시간 길 건너편에서 “동성애로 한미동맹을 해코지하지 말라”며 “동성애자 주한 미 대사 임명을 규탄한다”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들은 서울광장을 둘러싸고 북을 두드리거나 확성기와 마이크를 크게 울리면서 ‘동성애 반대’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퀴어축제 반대’ ‘동성결혼 반대’ 등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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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남성이 ‘동성애는 죄!’ ‘신이여, 이들을 용서하소서’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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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 반대자들이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 AFP통신

참가자들은 오후 4시30분쯤부터 축제의 꽃인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시작 전부터 조금씩 내리다가 폭우로 변한 비를 뚫고 약 3.8km를 걷다가 광장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쏟아지는 비에 당황하는 기색도 보였지만 대부분 비를 맞으면서 행진을 즐겼다. 드래그 퀸을 비롯한 대표들이 탑승한 트럭을 따르면서 빗속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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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즐기고 있다. 사진: AF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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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즐기고 있다. 사진: AFP통신

VICE는 비와 반대 시위자들을 뚫고 들뜬 마음으로 축제를 즐긴 참가자 10명을 만났다. 이들에게 축제에 나온 소감과 참가 이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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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 썸머. 사진: 이강혁

썸머

오프라인으로 3년 만에 열려 너무 뜻깊고요. 가슴이 벅차요. 지금 비도 오는데 이게 비인지, 눈물인지, 땀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너무 행복해요. 더 많은 사람이 오고 옆에 (반대 시위하는) 사람도 넘어와 같이 노는 화합의 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성소수자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요. ‘오늘만큼은 내가 제일 퀴어하다’ ‘나도 이렇게 살아있다’ ‘나를 위한 법을 만들어달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힘든데요. 서로 조금씩 더 노력하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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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 박유진(왼쪽)과 최평. 사진: 이강혁

최평, 22

(SQCF에) 처음 나왔어요. 사실 오는 길이 조금 무서웠어요. (반대 시위하는)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으니까요. 저도 퀴어라 나왔어요. 미국에서는 퀴어 문화를 많이 알고 있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모르고 산 것 같아서 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왔어요. 그런데 한국에도 이런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우리는 강합니다. 저들보다 더 강합니다!

박유진, 23

코로나19 때문에 3년 만에 SQCF에 나왔습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잖아요. 빠지면 안 되죠. (축제 현장에는) 항상 싸우는 분위기가 있어요. 퍼레이드도 즐기지만 항상 배틀(전쟁)한다는 기분으로 와요. 반대 세력을 마주하면 축제를 축하하는 마음과 더 싸워야겠다는 마음이 반반이에요. ‘살아남자’ ‘죽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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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 신승호. 사진: 이강혁

신승호, 19

살면서 퀴어퍼레이드에 처음 와봤어요. 같이 나온 동아리 사람들이랑 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참가자) 대부분이 평소 만날 수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뭉쳐 이런 분위기를 나눠서 좋아요. 사실 제 머리(카락) 색깔이 튀잖아요. ‘이왕 튀는 거 옷까지 튀게 입어보자’는 생각으로 한복을 입었어요. 또 사실 혐오 세력이 한복을 많이 입고 나와요. 그래서 ‘성소수자인 내가 한복을 입고 나오면 좀 더 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선택했어요. 차별이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차별금지법도 꼭 제정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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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 백현(왼쪽)과 블레인. 사진: 이강혁

블레인, 28

사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코로나19 이후 처음 하는 큰 행사잖아요. 오랜만에 해서 ‘사람이 많이 안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죠. 그런데 많이 나와서 기쁩니다. 사람들이 다시 프라이드(긍지)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행사가 있으면 ‘나는 나야’라고 말할 기회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동안 집에만 있다 보니 그렇지 못했잖아요. 행사를 통해 나와 비슷하고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느껴서 고취돼요. 이번 슬로건이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잖아요. 슬로건처럼 아직 코로나19가 안 끝났지만 좀 더 힘내서 자기 삶을 잘 일구고 내년에도 행사에서 건강하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백현, 25

한 명의 성소수자로서 연대와 사랑을 느끼려고 나왔습니다. 3년 만에 열려 기대도 많이 했죠. 전엔 6월에 열렸는데 (서울시의) 승인이 늦어져 7월에 열렸잖아요. 무더운데도 많은 분이 함께해 말 그대로 프라이드를 느낍니다. ‘저희다움’을 뽐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손잡고 다닐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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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 한민우. 사진: 이강혁

한민우, 21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네요. 사람도 진짜 많네요. 저번 퀴어퍼레이드가 너무 더워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늘은 오히려 선선해서 너무 좋아요. 기본적으로 (SQCF엔) 나와야죠. 너무 오고 싶은 마음이 컸었어요. 오면 재미있잖아요. 살아 있는 것을 느껴요. 주변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 같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는 오픈 (게이)이라 그런 게 없는데 은둔해 사는 사람들은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는 것처럼 느끼니까. 주변에 많다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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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사진: 이강혁

류호정, 29

오늘 행복합니다. 3년 만에 맞는 ‘명절’ 같아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나왔어요. 코로나19 시기가 마주 보고 소통하는 시간이 적어 ‘성소수자분들이 더 외롭진 않을까’ 걱정도 했었어요. 그런데 오늘 얼굴 보고 서로 잘 지낸다고 확인하니까 좋습니다. 이번 슬로건처럼 곁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시고 ‘파이팅’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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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 쪼이(왼쪽)와 벅챠. 사진: 이강혁

쪼이

오세훈 서울시장이 노출하지 말라고 해서 철저하게 지켜서 옷을 입었습니다. 1년에 서울에서 하루밖에 없는 퀴어 ‘명절’이니까 마음껏 즐기면서 입고 싶은 옷 입어요.

벅챠, 30

상쾌해요. 2018년부터 매년 나왔는데 연대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오늘 의상 포인트는 장갑과 선글라스. ‘모두 잘 살아왔으니까 더 잘살자’고 말하고 싶어요.

_인터뷰는 가독성과 길이 조절을 위해 다듬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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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hyup Kwo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