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 사이즈는 32DD(한국 기준 70E)다. 사회에서는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은 항상 고개를 돌려 가슴을 쳐다본다. 난 흉부에 달린 1.5kg 지방 덩어리가 익숙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틈만 나면 가슴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지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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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내가 사는 보수적인 아시아 국가 싱가포르에서는 그렇다.
10살 때부터 스포츠 브래지어(브라)를 입었다. 12살이 되던 해에는 가슴이 더 커졌다. 그래서 스포츠 브라가 더는 몸에 맞지 않았다. 하루는 이모가 선물해 준 브라렛(철사와 패드를 뺀 편안함을 강조한 홑겹의 브라)을 입어봤지만 너무 작고 얇아서 불편했다. 결국 이모가 언니에게 사준 더 큰 치수의 브라와 바꿔서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모는 “동생이 언니보다 가슴이 작을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엄마와 쇼핑을 하다가 가슴이 남보다 크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점원이 줄자로 가슴을 재더니 ‘34C’라고 했다. 브라 몇 개를 더 입어보고 가슴 크기에 딱 맞는 브라를 구매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몸에 딱 맞는 브라를 착용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때 가슴이 또래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알고 남의 시선을 조금씩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가슴이 그만 커지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15살이 될 무렵 패드를 넣은 D컵을 입었다. 몸의 크기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감지했다. 가슴이 커져 브라가 꽉 끼게 느껴졌다. 학교 친구들도 이런 신체 변화를 알아차렸다. 교복 위로 가슴 모양이 두드러져 보여서다. 한 남학생이 급식실을 지나치면서 ‘왕젖통’이라고 놀리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학교 상담 선생님에게 달려가 신고했다. 선생님이 마음을 헤아려 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뜻밖에도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엄한 얼굴로 쳐다봤을 뿐이었다. 나이 지긋한 성인 남성에게 몸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민망하고 어색했다. 선생님의 침묵에는 무언의 메시지가 있었다. 선생님은 ‘네 책임’이라고 혼내지는 않았지만 침묵함으로써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당시 가슴이 크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할까 봐 가슴을 누르는 브라를 입고 다녔다.
친구들과 달리 어깨끈이 없는 드레스나 가는 어깨끈이 달린 캐미솔을 입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가슴을 보고 문란하다고 하거나 창녀 같다고 수군거리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들마저도 몸을 평가한다고 느꼈다. 고등학교 1학년 댄스파티 때 가슴선을 노출하는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르려고 했다. 엄마가 스카프를 가져가라고 챙겨줬다. 무대에 오르고 나서야 스카프의 용도를 알았다. 가져가서 ‘가슴을 가리라’는 말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더라도 가려야 할 사람은 ‘너’라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또 날 성적으로만 보는 사람들과 그때부터 평생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도 직감했다. 사람들은 체형 보정 옷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탱크톱 나시 밑에 티셔츠를 입고 가슴 위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밖을 다녔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보수적인 엄마는 가슴이 파인 드레스를 입을 땐 재킷을 걸치지 않고서는 집 밖을 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면 티셔츠를 입고 나가도록 했다.
입고 싶은 옷을 입을 때는 가방 안에 옷을 넣고 집을 나와 공중화장실에서 갈아입었다. 나답게 당당히 살 수 없어 수치스러웠다. 떳떳해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면 혼이 났고 가슴 크기가 ‘부적절하다’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했다.
21살까지 그렇게 몸을 부끄러워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4년간 유학하면서 생각이 많이 변했다. 다른 여성들이 입고 싶은 옷을 아무거나 거리낌 없이 입는 걸 보고 차츰 달라졌다. 그때부터 체형을 보정하거나 몸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지 않고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덕분에 노출이 더욱 편안해졌다. 인스타그램에서 나와 비슷한 체형을 가진 여성들의 당당한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 여성들이 비키니나 탱크톱 나시, 몸매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자유롭게 입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부모님과 친척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옷차림이 ‘부적절’하다고 꾸지람을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와 달리 당당할 수 있었다. 한 번은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여성들이 비키니를 입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왜 이 여성들은 그렇게 할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논쟁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몸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젠 어떤 악성 댓글이 달리더라도 원하는 옷을 당당히 입으려고 한다. 다른 아시아 여성들도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또 섹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미셸 바리나타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패션·미용 전문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