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 경북 안동에 대마를 기르는 농장이 있다. 그것도 섬유용이 아닌 대마를 기르는 곳.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이 의아해한다. 합법적으로 대마를 재배하는 농장이 있다고? 정부는 2020년 최초로 안동을 중심으로 ‘경북산업용헴프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했다. 허가를 받은 업체가 수출을 목적으로 대마를 재배하고 성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특구인 이곳은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사실 한국은 2018년 말 동아시아 최초로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했다. 대마의 의학적 효능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취급을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환자의 치료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환자들은 이듬해 3월부터 대마 성분이 들어간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대마 규제자유특구 지정도 이런 법 개정을 비롯한 변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VICE는 이 규제자유특구에서 대마를 재배하는 농업 스타트업 ‘상상텃밭’의 김수빈(28) 최고경영자(CEO)를 최근 만나 이 일을 시작한 동기와 어려움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김 대표는 스마트 농업 기술로 산업용 대마를 재배하는 국내 최초의 농부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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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대마를 둘러싼 편견으로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어야 했다. 공무원뿐 아니라 사업 관계자, 주변 지인한테마저도 반갑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그는 VICE와 인터뷰에서 “사실 ‘대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마약’이니까 주변 사람들이 ‘뽕쟁이 새끼야’라고도 농담했다”며 “그런데 이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대마를 둘러싼 인식이 특정 각도로 정해져 다른 면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는 “오락용 대마를 당장 합법화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해답을 찾지 못한 파킨슨병이나 뇌전증(간질) 등 신경계 질환에 좋다고 알려져 있으니 그런 질환을 앓는 분이나 가족이 일단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한국이 대마를 의료용으로 활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법 개정이 너무 느려서 사회 수준을 못 따라간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의료대마운동본부(KMCO)의 설립자이자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을 주도하는 강성석 목사 겸 활동가는 VICE와 통화에서 “법은 개정 후에 의료용 대마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정부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어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며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상위법을 매우 제한하고 다르게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강 목사는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제한이 풀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추가적인 제한과 규제를 만들어 환자들이 일부 질환에 한해 특정한 의료 기관에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일부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게 했다”고 꼬집었다.
환자가 대마를 의료용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데는 정부뿐 아니라 언론의 책임도 있다.
김 대표는 “가장 큰 편견은 주요 성분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을 둘러싼 것”이라며 “THC가 환각을 유발하는 성분이라는 잘못된 프레임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효과는 헛것이 보이거나 헛소리가 들리는 환각이 아니라 안정 작용”이라며 “THC가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환각 작용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부분 한국 언론은 THC를 설명할 때 앞에 ‘환각 성분’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김 대표는 또 다른 성분인 칸나비디올(CBD)은 효과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편이지만 THC는 비과학적인 정보의 범람으로 기능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이 같은 비과학적인 정보와 사회적인 편견,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대마가 지니는 의학적인 효과와 높은 시장 잠재력을 믿고 대마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사실 인식은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한다”며 “전에는 어딜 가서 대마 사업을 한다고 하면 ‘그런 거 해도 되냐’, ‘왜 하냐’ 이런 소리를 들었는데 요즘에는 최소한 ‘그런 거 왜 하냐’는 소리는 안 듣는다”며 “사람들이 건강에 좋다는 건 안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북산업용헴프규제자유특구가 지난 10월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3명(36.8%)이 대마의 의학적 치료 효능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김 대표는 버티컬(수직형) 스마트팜으로 대마의 양과 질을 최적화하고 있다.
그는 대마 중에서도 목표하는 성분이 가장 풍부한 꽃과 잎을 가장 많이 얻으려고 한다. “환경에 관계없이 1년 내내 똑같은 대마의 양과 질을 얻고 비용을 줄여서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최신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며 “식물에 물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자주 줄지, 빛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자주 줘야 하는지에 맞춰 환경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또 “식물의 특성만 제대로 파악하면 기술을 적용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가 수장으로 있는 ‘상상텃밭’은 대마를 전부 실내 하우스 방식으로 재배하고 있다. 목표하는 주요 성분을 얻기 위해서는 ‘수정되지 않는 암꽃’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키우는 대마는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그루에서 자라는 자웅이주 식물이다. 김 대표는 “대마가 수정되면 우리가 목표하는 주요 성분이 거의 사라져버린다”며 “대마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수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실내에서 재배한다”고 설명했다.
또 기술을 통해 식물의 키도 제한하고 있다. 키를 너무 크게 키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대마는 원래 키가 큰 식물”이라며 “세로형으로 두 단으로만 키운다”고 말했다. 그는 “키를 제한하지 않으면 관리가 힘들어진다”며 “또 섬유용과 다르게 줄기가 아니라 주요 성분이 모여 있는 꽃과 잎이 필요해서 식물의 키를 제한해 재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식물의 허리 밑으로는 의료용으로 가치가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이렇게 재배한 식물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좀 더 자유롭게 실험해보고 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지금은 규제자유특구라는 이름과 달리 존재하는 여러 제한으로 현실적으로 해볼 수 있는 부분이 적어 아쉽다는 생각이다.
그는 “우리가 대마 재배는 잘 한다고 자부한다”며 “중장기적인 목표는 재배한 식물로 여러 제품을 개발해 만들어보고 국내외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 목사는 경북 규제자유특구의 각종 규제뿐 아니라 운영 방식 자체에도 회의적이다. 정부가 특구를 넘어서는 보다 더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중국이나 북한 같은 체제의 국가들이 지정하는 (경제특구처럼) 보여주기식 규제자유특구가 아니라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규제자유특구의 업체들이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규제가 없는 국가의 업체에서 수출하는 제품과 맞붙었을 때 가격 경쟁력이 생길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대마의 가치를 믿는다. 그는 대마를 둘러싼 제한이 더 풀린다면 대마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 거라고 내다본다.
“아픈 사람이 대마의 도움으로 낫는다면 생기는 ‘소셜 임팩트’가 크다고 생각해요. 난치병과 불치병을 겪는 사람의 마음은 상식적으로 굉장히 간절하겠죠. 대마가 이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정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본 기사의 출처는 VICE World News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