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한국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가장 잘한 나라로 꼽힌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중국인의 왕래가 잦은 편이었지만 6일 기준 확진자는 438명이고 이달 들어 신규 확진자는 아예 없거나 5명 이하를 줄곧 유지했다. 지금까지 전체 사망자도 6명에 불과했다. 성공적인 방역의 중심에는 2016년 대만 역사상 최연소 장관으로 임명된 탕펑(39·오드리 탕) 디지털 정무위원(장관급)이 있다.
탕 장관은 파격적인 인물이다. 최연소 장관일 뿐 아니라 중학교를 중퇴했고 해커 출신에 최초의 트랜스젠더 장관이다.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했고 16세 때 스타트업을 창업해 실무를 익혔다. 그렇게 전문성을 인정받아 장관에 올랐다. 코로나19 대응에는 정부의 정책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시민 의식이 필요했다. 탕 장관은 지난 4년간 정부와 시민사회를 디지털 기술로 연결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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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장관은 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한 국제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지난 1월 31일 타이베이 인근 항구 도시 지룽에 정박했을 때 승객들이 다녀간 모든 곳을 지도에 표시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당시 일본 매체는 탕 장관을 대만의 10대 정보기술(IT) 거인이자 IQ가 180이 넘는 천재라고 소개하면서 대응에 찬사를 보냈다.
마스크 수급 안정화에도 공을 세웠다. 탕 장관은 마스크 실명제를 건의했을 뿐 아니라 약국의 마스크 재고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을 도입해 혼란을 줄였다. 대만에서 가장 널리 쓰는 커뮤니케이션 애플리케이션 라인에 채팅 봇을 만들어 어디서, 어떻게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지 실시간으로 답변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한국은 마스크 수급 안정화를 위해 대만의 마스크 정책을 벤치마킹했다.
탕 장관은 온라인으로 필수품을 주문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에도 힘썼다. 전문가들은 출시 초기라 완벽하지 않지만 올바른 방향이라고 진단했다. 위험사회정책연구센터 로이 응어잉 연구원은 “온라인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보는 건 좋은 생각”이라며 “대만은 코로나19를 제어하는 상황이라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여러 시도를 해보고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좋다”고 전했다.
탕 장관은 VICE와 인터뷰에서 “정보 접근권은 인권”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 개발자들과 정부를 감시하는 오픈소스 온라인 플랫폼 ‘거브 제로(GOv)’를 만들었다. 시민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을 비롯해 여러 시위 과정에서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혼란을 최소화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열린 정부’. 이건 탕 장관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는 “앞서 ‘열린 정부’를 지지하는 시장 후보자는 선거에서 승리했고 반대하는 후보자는 낙선했다”며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는 건 이미 대만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은 LGBTQ 커뮤니티를 포용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5월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하지만 LGBTQ 중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성소수자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탕 장관이 대만 정부의 중심에서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해결해나가는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다.
탕 장관은 24세였던 2005년 트랜스젠더의 길을 택했다. 그는 “LGBTQ 커뮤니티의 지지와 응원으로 당시 힘들거나 어렵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만약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5000명이 있고 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면, 성전환은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새 모험이 아닙니다.”
LGBTQ 커뮤니티 덕분에 트랜스젠더의 삶을 사는 게 덜 힘들었다는 말이다. 탕 장관은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젠더나 성정체성, 문화, 인종, 이념에 관해선 소통 창구인 커뮤니티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는 앞으로 한 내각의 수장으로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양성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탕 장관은 마스크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기 전에도 온라인 커뮤니티 ‘조인’을 만들었다. 온갖 사연이 있는 시민들이 온라인 청원을 통해 정책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시민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해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을 돕는다.
코로나19로 불안과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탕 장관은 변화에 낙관적인 입장이다. 그는 이번 기회로 일상에서 실물 크기의 화면으로 상대방을 보며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텔레프레젠스(원격실재)’를 시대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믿는다.
탕 장관은 “(사람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텔레프레젠스’가 특별한 경우에만 쓰는 기술이 아닌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고 강조했다. 이어 “‘텔레프레젠스’를 통해 먼 거리의 몰랐던 사람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탕 장관이 코로나19를 막는 선봉장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전문가와 협업했기 때문이다. 탕 장관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장관에 오르지 못했다면 다양한 커뮤니티 간 협력과 최첨단 기술의 활용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본 기사의 출처는 VICE ASIA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