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보드 고등학교 2020 도쿄올림픽 일본 스케이터
일본 도쿄의 반탄디자인연구소(반탄고등학교)의 스케이트보드학과 학생들. 사진: 히로키 타니구치
Sports

일본 유일의 스케이트보드 고등학교 학생들이 올림픽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

스케이트보드학과 학생들은 배기팬츠를 교복처럼 입는다.

이들은 얼핏 보면 평범한 고등학생 같다. 가방에는 교과서와 펜, 껌을 넣고 다닌다. 그런데 다른 학생은 잘 들고 다니지 않는 물건도 하나 들고 다닌다. 바로 스케이트보드다.

이건 일본 도쿄의 반탄디자인연구소(반탄고)의 스케이트보드학과 학생들 이야기다.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스케이트보드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일본 유일의 고등학교다.

스케이트보드학과 학생들은 선수 수준이다. 보드를 교과서, 보드장을 교실로 삼는다. 배기팬츠를 교복처럼 입는다. 보드를 안 탈 때는 디자인이나 영상 수업을 듣는다.

스케이트보드는 2017년 올림픽 종목으로 지정됐다. 학교는 이때부터 학생들에게 경쟁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종목의 비주류 이미지를 바꾸려고 했다.

일본은 아직 공공장소 대부분에서 스케이트보드 이용을 금지한다. 올림픽 전까지는 스케이트보드장 자체도 수가 충분하지 않았다. 대회 직전이 돼서야 시설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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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탄고는 스케이트보드의 인기를 높이고 대중의 인식과 편견을 개선하려고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사회 진출 후에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서다.

교내 호소이 노부히로 감독은 VICE와 인터뷰에서 “스케이트보드는 축구나 야구와 같은 주류 스포츠와 달리 운동 하나만 해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운 종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게 학생들에게 디자인과 음악, 영상을 따로 가르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호소이 감독은 스케이트 문화의 모든 요소가 학생들의 장래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스케이트보드 고등학교 2020 도쿄올림픽 일본 스케이터

17세 일본 학생 야마시타 고노스케가 프로 선수에 가까운 실력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사진: 히로키 타니구치

호소이 감독의 노력은 4년도 채 안 돼 빛을 발했다. 17살밖에 안 된 어린 선수들이 ‘프리미티브’나 ‘이레이즈드’ 같은 대형 스케이트보드 회사로부터 후원을 받는다. 

또 학교는 올림픽 경기 전부터 더 많은 학생으로부터 입학 지원서를 받고 있다.

일본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창의성에 중점에 두고 교육과정을 개편했다. 책상에 앉아 학과 공부만 해서는 급변하는 경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1965년 개교한 반탄고는 2016년에 스케이트보드 전공을 기획했다. 일본 내 스케이트보드 애호가가 늘고 이들의 문화와 패션이 사랑을 받으면서 학교의 인기는 치솟았다.

일본 어반스포츠투어리즘연구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스케이트보드 인구는 400만명에 육박한다. 이 인구는 브라질과 미국 바로 다음으로 나타났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야마시타 교노스케은 17살밖에 안 됐지만 선수를 뺨치는 실력의 소유자다. 그는 “뽑기 기계에서 장난감 보드를 뽑아 처음 보드를 접했다”고 회상했다.

스케이트보드 고등학교 2020 도쿄올림픽 일본 스케이터

17세 일본 학생 야마시타 고노스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스케이트보드 홍보 영상을 찍기 위해 두 달간 생활하고 있다. 사진: 히로키 타니구치

그는 “호기심에 한 번 실제 스케이트보드를 탔는데 무척 재밌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흥미를 붙인 학생은 요즘 하루 평균 3~6시간씩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반탄고 학생들은 월요일과 수요일에 스케이트보드 수업을 5시간 이상 듣는다. 화요일엔 영상, 목요일엔 디자인과 영어를 공부한다. 금요일엔 수학과 과학 수업을 듣는다.

학교는 스케이트보드만으로는 경제 활동을 하기 힘들다고 보고 다른 과목도 가르친다.

호소이 감독은 “일본의 스포츠 산업 규모는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는 중간 광고를 넣고 유명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며 “하지만 스케이트보드에서는 이런 상업적 기회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야마시타도 어리지만 이런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을 벗어나길 꿈꾼다.

그는 “사람들은 선수 이름을 건 스케이트보드 제품이 나와야 진짜 프로선수로 생각한다”며 “큰 회사 대부분이 미국과 캐나다, 호주에 있어 그쪽으로 가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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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달 미국에 초청을 받아 두 달간 스케이트보드 홍보 영상을 찍었다.

학급 친구인 가나모리 린카도 해외 진출을 꿈꾼다. 그는 VICE에 “해외에서 성공하는 건 어렵지만 내 후원자도 미국에 있다”며 “꼭 직접 가서 만나보고 싶다”고 전했다.

스케이트보드는 여태껏 남성 선수 중심의 스포츠였다. 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여성 선수가 활약하면서 여성들이 스케이트보드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저변이 넓어졌다.

13살 일본 선수 니시야 모미지는 최근 여자 스케이트에서 최연소로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영국 선수 스카이 브라운도 13살이지만 뛰어난 기술과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그는 책도 벌써 한 권 냈고 100만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구독자를 자랑한다.

스케이트보드 고등학교 2020 도쿄올림픽 일본 스케이터

가나모리 린카가 오른손으로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웃고 있다. 사진: 히로키 타니구치

올해 20살인 니시무라 아오리는 지난달 26일 올림픽 여자 스케이트 경기에서 8위에 올랐다. 니시무라는 8살 때 아버지의 낡은 스케이트보드를 보고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그는 VICE에 “‘여자인데도 스케이트보드를 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후배 여성 스케이터를 격려하기도 했다. 그는 “여자들이 계속 도전하길 바란다"며 “어려울 수 있지만 장벽을 무너뜨리면 큰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스케이트보드 고등학교 2020 도쿄올림픽 일본 스케이터

스케이트보드 선수 니시무라 아오리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시게오포토 제공

스케이트보드의 위상은 일본에서 분명히 높아졌다. 하지만 학생들은 스케이트보드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마냥 반기지 않는다.

반탄고의 야마시타와 카나모리는 스케이트보드 경기를 나갈 계획이 없다. 야마시타는 올림픽 예선전에 초청받았지만 출전을 포기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인데도 나갈 생각을 접었다.

그는 “생각해봤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일본에서 할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스케이트보드 고등학교 2020 도쿄올림픽 일본 스케이터

스케이터들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 히로키 타니구치

반탄고 학생들의 일부는 비주류와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상징했던 스케이트보드가 올림픽의 종목이 되면서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이점이 있다고 인정했다. 학생들은 올림픽을 시청할 계획도 없을 만큼 경기에 무관심하지만 새 스케이트보드 경기장이 많아져 연습이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Hanako Montgom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