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국왕 공주 아버지 프린세
모든 사진: 본인 제공 / VICE
Life

14살 때 처음으로 자신이 공주라는 걸 알게 된 여성

평범했던 10대가 어느 날 아버지가 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평범한 10대가 하루아침에 한 나라의 공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제 이야기와 비슷해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비슷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제 삶을 옮겨놓은 듯했습니다.

저는 14살 때 아버지가 말레이시아의 왕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와 단둘이서 살았습니다. 5살 때 유치원 선생님이 부모님 두 분을 모두 모시고 수업에 오라고 하기 전까지는 아버지를 전혀 생각하거나 찾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아버지가 왕이라서 수업에 모시고 올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해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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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1984년쯤 어머니에게 안겨 있다.

당시 어머니와 필리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6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갔습니다. 캘리포니아주의 여러 집을 월세로 전전했습니다. 자가를 가진 적은 없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중학교 때 리바이스 청바지가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살 형편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모조 제품을 뒤졌습니다. 또 인기 운동화를 사고 싶었습니다. 인기 운동화를 사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신발을 살 수는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간호사였습니다. 홀로 절 키우려고 고생했습니다. 어머니를 보면서 정말 공주였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복잡했지만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14살이던 1996년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다토 마이클이라는 남성이었습니다. 나중에야 다토라는 이름이 말레이시아에서 흔한 이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대신에 전화한 변호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말레이시아 동북부 파항의 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아버지가 저를 만나 보고 싶어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때는 제게 아버지가 있다는 것과 아버지가 왕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몇 주 후에 영국 런던의 호텔 식당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점심식사를 함께 했는데 예상과 달리 변호인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아버지 수행원들도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제 관심사와 꿈을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당시 주변 환경이 너무 낯설고 두려워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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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1996년에 영국 런던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나서 대화하고 있다.

아버지는 제 상상과 달리 60대 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아 놀랐습니다. 얼굴 외에 성격도 비슷했습니다. 저처럼 장난기가 있으면서도 냉소적인 성격이었습니다.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서 성격과 외모를 물려받았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그 후 몇 년간 아버지를 두 번 더 만났습니다. 모두 점심시간에 호텔 식당에서 건조하고 딱딱한 분위기였습니다. 아버지는 양 볼에 가볍게 입맞춤 하는 인사를 하고 언제나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관심사와 학교생활을 물어봤습니다. 또 런던에서 가볼 만한 곳, 쇼핑할 장소를 말했습니다. 저는 커서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좋아했습니다. 대화 중에 가장 기뻤던 때는 아버지가 제가 언니와 닮았다고 했던 때였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언니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기뻤습니다.

우린 매번 만남을 끝낼 때 습관처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확실한 약속을 잡거나 분명한 날짜를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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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1997년에 영국 런던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관광하고 있다.

아버지와 통화하려고 했지만 직접 연락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변호인을 통해야 했습니다. 이메일을 보내 아버지가 언제 런던에 오는지 물었습니다. 대부분 어떤 답장도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런던에 주택을 소유했고 정기적으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 필리핀에 있는 가족을 보러 갈 때 변호인에게 말레이시아를 들른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런던을 방문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엇갈리다가 2003년 세 번째 만남이 마지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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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 못하는 아버지를 두고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2019년에 누군가가 소셜미디어에서 메시지를 보내줘 아버지의 부고를 처음 접했습니다. 뉴스를 통해 부고를 확인했습니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물론 슬펐지만 슬픔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솔직히 이상적인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가 언제든 안부를 물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이라는 게 그런 걸까요? 아버지는 이제 제게 영영 연락하지 않을 겁니다. 또 제 아이들도 영영 보지 못할 겁니다. 아버지는 제가 법조계에서 인턴십을 했다는 것도 그 후에 사회복지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도 영영 알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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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2019년 하와이에서 가족들과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아버지를 잘 몰랐다는 사실보다 아버지를 알 기회가 없어졌다는 게 더 슬펐습니다.

2009년 아버지가 재위 중일 때 그가 통치하던 파항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사생아라서 궁궐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편지를 써서 경비원에게 전했습니다. 지지자가 전하는 편지인 줄 알았을 겁니다. 궁궐에 갔던 이날이 살면서 제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