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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 원폭 75주년, '검은 비' 피해자 피폭 첫 인정

지지자들은 정의 회복에 75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일본 히로시마 원폭
(왼쪽)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폭발한 리틀 보이의 버섯구름. (오른쪽)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서 폭발한 팻 맨의 버섯구름. 사진: 위키피디아

6일은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75주년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다다랐던 75년 전 오늘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다. 원폭 투하 후 주변엔 '검은 비'가 내렸다. 검은 비 피해자들은 지난주 일본 법원의 판결로 75년 만에 처음 피폭을 인정받았다.

일본 법원은 지난 29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후에 인근 주민들이 방사성 물질이 담긴 검은 비를 맞아 피폭 피해를 입었다고 인정했다. 방사능과 연관된 구체적인 의료 기록에 불합리한 점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 손을 들었다. 또 무상 의료 서비스 제공을 명령했다.

당시 원폭 투하 직후 열과 열전류가 섞인 검은 비가 30분가량 동안 인근 지역에 내렸다. 검은 비는 피폭자를 낳았을 뿐 아니라 주변 수원과 음식, 환경의 피폭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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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검은 비에 노출된 사람들은 암과 백내장 등 방사능과 관련된 여러 질병을 얻어서 평생 고통받고 있었다. 2018년에 실시된 한 테스트 결과 방사성 입자인 세슘-137은 70여년이 지난 후에도 검은 비에 노출된 주민의 셔츠에서 검출됐다.

소송은 2015년 원고 84명이 제기했다. 모두 히로시마 지역 출신의 주민과 유족이다.

AP통신은 법원이 검은 비 피해자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자 원고 측 변호사가 '전면승소'라는 문구를 보여줬고 원고와 지지자들이 손뼉 치고 환호했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은 소송을 5년 전에 제기했지만 오랜 싸움을 75년간 이어왔다.

지지자들은 이번 결정은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정의 회복에 75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피폭 피해자인 77세 무카이 히토시는 마이니치신문에 "2011년 사망한 동료 피해자 무라카미 츠네유키가 수집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갈색 봉투 163개를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피해자들이 검은 비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목소리를 들었다. 또 수집한 자료를 1970년대에 일본 정부에 제출했다.

다카노 마사아키 히로시아원폭검은비협의회장은 NHK방송을 통해 판결을 환영했다. 그는 "검은 비 피해자들의 인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지 40년이 지났다"며 "옳은 판결에 매우 기쁘고 피고가 앞으로 항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은 피 피해자이기도 한 다카노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놨다. 그는 "사건 장소에서 20km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며 "당시 7살이었는데 학교 창문 밖으로 매우 밝은 섬광이 비추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귀갓길에는 검은 비가 내렸다"며 "그날 이후로 온 가족이 심한 설사와 고열로 건강 이상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다카노 회장은 "어머니가 50대에 암으로 사망했고 다른 이웃들도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서 숨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원폭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며 "그렇지만 사회적인 차별이나 지탄을 받을까 봐 두려워서 침묵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해 약 8만명을 즉시 죽였다. 그 후 몇 년간 방사성 물질 노출로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3일 후인 8월 9일 나가사키에도 원폭을 떨어뜨려 약 4만명을 죽였다. 일본은 일주일여 만에 백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