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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자 바체바 다간이 팔에 새겨진 신원 확인용 문신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메나헴 카하나/ 게티이미지
Life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 던진 10가지 질문

“누구나 어떤 순간에서도 옳은 행동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주축이던 나치당은 유대인과 슬라브족, 장애인, 동성애자 등 약 1100만명을 학살했다. 이걸 홀로코스트 또는 쇼아라고 한다.

이스라엘 여성 바체바 다간은 올해 96세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면서 동화책의 작가다. 폴란드 태생이지만 나치 침공 후 1940년 초 독일로 탈출해 나치의 가정부로 일했다. 

그는 독일 슈베린에서 체포돼 감옥 6곳을 전전하다 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후에 주로 여성을 수용했던 라벤스브뤼크 수용소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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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모는 폴란드 트레블링카 수용소에서 살해됐다. 여동생은 폴란드 라돔의 유대인 게토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총살됐고 남자 형제 두 명도 학살 과정에서 살해됐다.

다간은 그렇게 가족들의 죽음 속에서 생존했다. 해방 후 이스라엘로 이주해 현재 최대 도시 텔아비브 인근 홀론에서 여생을 보낸다.

그는 홀로코스트에 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특히 독일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바로 이런 때일수록 말이다.

VICE는 다간에게 궁금했던 10가지 질문을 했다.

VICE: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댁은 어딘가요?
바체바 다간
: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어요. 원래 동유럽 국가 폴란드에서 태어났죠. 폴란드에는 요즘도 일 때문에 가끔 들러요. 게토가 있던 바르샤바나 아우슈비츠에 가죠. 폴란드어를 아직 하는데 거기 가면 기분이 좋아요. 아직 아무것도 잊지 않았어요.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동화책을 쓰셨어요.
해방 후에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을 돌봤어요. 아이들이 제 왼쪽 팔에 수용자 신원 확인용 숫자 문신이 새겨져 있는 걸 보고 그게 무엇인지 묻더라고요. 사실 그 아이들 때문에 동화책을 쓰려고 했어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무엇인지 생각했죠.

아이들에게 홀로코스트를 가르쳐야 할까요?
아이들은 우리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결국 배워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알죠. 무서운 이야기만 해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게 중요해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솔직하게 말해야 해요. 하지만 좋았던 일들도 알려야 하죠.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이 서로 도운 이야기요. 아이들이 옳고 그름 사이에서 언제나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걸 알길 바라요. 아이들은 사소하더라도 매일 이런 결정을 내리죠.

아우슈비츠에서 좋았던 순간도 있었나요?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빵을 먹을 때 항상 서로 나눠 먹었어요. 여성 7명이 빵 하나를 함께 먹은 적도 있죠. 심지어 빵가루도 모두 공평하게 나눴어요. 제 책에 우리가 어떻게 빵을 먹었고 먹을 양을 계산했는지 설명하는 시를 실었죠. 삶이 곧 고통이던 시기였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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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나치가 있었나요?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유대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병균 취급을 받았어요. 가정부로 일했던 집의 손님방에는 히틀러 초상화가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죠. 전 매일 그 방에 가서 먼지를 털었어요. 해방 후에 그 집에 찾아갔죠. 아직도 제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때 그 가족의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어요. ‘총통(히틀러)이 결국 해내지 못했군요.’

나치에 복수하고 싶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음, 어쩌면 수용소 감독관한텐 하고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그는 이미 전후에 사형당했어요. 사람들이 후회하는지 물었더니 ‘아니요, 제 모국을 위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고 하더군요. 병적인 애국심이에요. 나치를 맹목적으로 따랐을 뿐이에요.

수용소에 있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나요?
항상 두려움에 떨며 살았어요. 하지만 잘 견뎌 냈어요. 수용소에서 항상 할 일을 찾았어요. 다른 수감자들이 적은 글을 읽었어요. 뭔가를 배우면서 긍정적인 기운을 얻었고요. 수용소에는 유럽 전역의 사람들이 있어서 벨기에 출신 여성에게 프랑스어도 배웠죠. 

독일인이 자국의 역사를 안다고 생각하나요?
요즘도 독일에 신나치주의처럼 나치의 명맥이 유지되는 걸 보면 잘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독일인 일부는 역사를 모른다는 증거예요. 물론 독일인도 피해자죠.

히틀러를 반대하지 않았던 독일인은 가해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당시에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었거든요. 많은 사람이 무심하고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 수용소에는 독일인들도 있긴 했어요. 처우가 나았고 신원 확인용 문신을 새기지 않았죠. 아우슈비츠에서 독일 여성이 가장 나은 대우를 받았어요. 머리카락이 있으면 독일인이었어요.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나요?
가끔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꿈을 꿔요. 하지만 전 거기서 빠져나왔고 여전히 살아 있죠.

Thembi Wo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