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Q

‘동성 키스신’ 삭제에 진한 키스로 응답한 게이 커플

커플은 키스 챌린지로 ‘모든 키스는 동등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Hyeong Yun
Seoul, KR
망원댁TV 키스 챌린지 보헤미안 랩소디 게이 유튜버
게이 커플 킴(왼쪽)과 백팩이 SBS가 영화 속 동성 키스 장면을 삭제한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키스를 나누고 있다. 사진: 망원댁TV 제공

게이 유튜버 커플이 키스하는 모습을 찍어서 인증하는 ‘키스 챌린지’를 시작했다. 설 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한 SBS가 동성 키스신을 삭제한 것에 항의하는 의미다.

게이 유튜브 채널 망원댁TV는 지난 17일 채널에 ‘SBS 보고 있나? #보헤미안키스챌린지 동참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다.

커플은 영상 속에서 “SBS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했는데 남성이 여성과 키스하는 장면은 내보냈는데 남성과 키스하는 장면만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키스의 상대가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동등하다는 것을 알리는 ‘보헤미안 키스 챌린지’에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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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은 이런 메시지를 남긴 후 영상 중간에 진한 키스를 약 8초간 나눴다.

망원댁TV를 운영하는 ‘백팩’과 ‘킴’은 연인이다. 8년 차 연인으로 일상을 다룬 영상을 올리고 구독자의 연애 사연을 소개한다. 현재 21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자랑한다.

전업 유튜버 백팩은 VICE와 인터뷰에서 “원래 유튜브에 키스를 이렇게 진하게 하는 영상을 올리지 않는다”며 “SBS 검열에 저항하는 의미로 영상을 올렸다”고 전했다.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킴은 “인권 운동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참여하기 어려워한다”며 “사람들이 쉽고 재밌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챌린지에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키스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 ‘#보헤미안키스챌린지’, ‘#모든키스는동등하다’와 함께 올리면 된다.

‘#모든키스는동등하다’

이들은 이성애자이거나 연인이 없어도 챌린지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커플은 “혼자 손등에 키스하는 모습을 촬영해 올려도 괜찮다”고 말했다.

다음 챌린지에 참여할 유튜버를 지목하면서 게이와 이성애자 커플을 지목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를 담은 영화다. SBS는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와 연인 짐 허튼의 키스 장면을 삭제했다. 또 두 남성 보조 출연자가 키스하는 장면도 모자이크했다. 반면 이성 간 키스 장면은 삭제하지 않았다.

영화는 시청률 6.3%로 지난 설 영화 중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2018년 개봉해 한국에서만 관객 수 약 995만명을 동원하고 매출액 약 862억원을 넘겼다.

성소수자차별반대단체 무지개행동은 19일 방송통신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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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방송통신심의 규정 제9조(공정성), 제29조(사회통합), 제31조(문화의 다양성 존중)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SBS가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 편집, 방영하는 데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진정을 제기했다.

단체는 성명을 통해 “명백한 차별이자 검열”이라며 “SBS 관계자는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폭력적이고 선정적으로 취급해 검열하는 태도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밝혔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한국 방송계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끊임없이 지워왔다”며 “오랜 성소수자 지우기 역사에 SBS가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고 꼬집었다.

퀸의 객원 보컬이자 보헤미안 랩소디에 카메오로 출연했던 애덤 램버트도 비판했다.

미국 성소수자 매거진 ‘아웃’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성수소자에 대한 검열을 지적한 무지개행동의 논평을 인용해 게시글을 올렸다. 램버트는 해당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키스 장면은 노골적이거나 외설적이지 않았다”며 “이중잣대가 정말 존재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동성 커플은 자신의 웨딩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챌린지에 동참하면서 “챌린지는 미디어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지지했다.

남성은 VICE와 인터뷰에서 “방송국이 시청자의 의식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 같다”며 “한국이 요즘 코로나19 방역이라든지 케이팝이라든지 여러 분야에서 외국의 조명을 받는데 소수자 문제에서는 아직 한참 뒤처졌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고 밝혔다.

한국 방송계에서 성소수자를 다룰 때 논란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EBS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는 성소수자 특별편을 통해 이들의 삶을 다뤘다. 당시 반대자들이 시청자게시판에 “공영 방송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항의 글을 올렸다.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과 기독교 단체는 EBS 사옥 앞에서 방송 폐지를 요구하면서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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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까칠남녀’의 ‘성소수자 특집’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김보미 씨는 VICE에 “성소수자였던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에서 동성 키스 장면만을 삭제했다는 것은 명백한 ‘성소수자 지우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프로그램은 예정보다 2주 먼저 종영했다. 또 2015년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은 교복을 입은 두 여고생이 키스하는 장면을 내보냈다가 큰 곤혹을 치렀다. 

이 장면이 문제가 돼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법적 제재인 ‘경고’를 받았다.

‘망원댁 TV’의 지목으로 키스 챌린지에 참여한 유튜버 ‘디아’도 미디어에서 성소수자의 삶이 지워진다고 지적했다. 유튜버는 30대 게이 커플의 일상을 다룬다.

디아는 “미디어에서 게이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게이들이 30대가 넘어가면 한국에서 커플로 사는 삶을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미디어에서 게이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게이들이 30대가 넘어가면 한국에서 커플로 사는 삶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Hyeong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