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은 28세 때까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싸웠다. 그때까지 언젠가 자신에게 죽음이 닥쳐올 거란 사실을 병적으로 두려워하면서 살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형제 모두를 잃어서일까. 아마 신경 질환을 앓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이 남성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무서워 항상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두려움은 그의 정신적 에너지를 갉아먹었다.
남성이 두뇌의 일부를 떼어내기 전까진 말이다. 이 남성은 미국에 거주하는 조디 스미스다. 남성이 떼어낸 부위는 뇌에서 공포 반응을 담당하는 우측 편도체다. 편도체는 뇌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부분이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우리가 공포라고 부르는 감정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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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2세인 스미스는 두려운 게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생리학 관점에서는 겁이 없다.
스미스는 VICE와 인터뷰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건 구체적인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은 ‘여자들하고 말하기가 두려워’라든지 ‘실패가 두려워’라는 식으로 두려움으로 많은 걸 설명한다”며 “하지만 내가 말하는 두려움은 죽음을 떠올리거나 심각하게 다쳤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느끼는 공포는 반사적 수준에서 벗어나 논리적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스미스는 26세에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았다. 하루에 세 번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든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짧지만 강렬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을 두려움 속에서 살았지만 이런 강렬한 감정 동요를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저 조금 불편한 일 정도로 여겼다. 이게 간질 발작인지 확실히 몰랐다. 하지만 때때로 굉장히 심한 반응을 겪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스미스는 어느 날 가족 모임에 갔다가 곧 발작이 일어날 것이라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바로 정신을 잃었다. 20분 후에 정신이 돌아왔지만 이웃집 마당에서 술에 취한 것처럼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잃었을 때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얼마 후에 전문가로부터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2년간 약이란 약은 모조리 구해 먹어봤다. 하지만 효과가 없어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발작이 심해지고 뇌가 손상되는 걸 막으려면 수술밖에 답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 수술은 간단한 수술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 죽음까지 생각해야 했다.
스미스는 크게 두 단계를 거쳐 수술을 받았다. 먼저 의료진이 발작 발생 부위를 알아내려 그의 뇌에 탐침을 삽입해 일주일간 관찰했다. 이 기간에 그는 일부러 발작을 유도하려고 자신에게 고통을 줬다. 이를 테면 잠을 덜 자고 시끄러운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관찰 마지막 날 신경심리검사를 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그는 결국 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우측 측두엽의 전면부 절반과 편도체, 우측 해마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스미스는 수술 3일 후 퇴원할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 바로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는 “소음이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주의력결핍장애(ADD)와 기억장애를 겪었다”고 회상했다.
수술 2주 후에 또 달라진 점을 알아차렸다. 평생 괴롭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얼핏 생각했을 때는 긍정적 징후 같았다. 하지만 1년 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 뉴저지주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여성 한 명이 그 뒤에 서 있던 남성 5명을 보고 소리를 지르더니 스미스를 가리켰다. 그러자 남성들은 그를 포위하며 다가왔다. 그는 이들이 강도라는 걸 명백히 인식했는데도 떨지도 않았고 뒷걸음질 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덤덤하게 계속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고 한다. 그도 놀랐지만 깡패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혼자 있으면서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이들도 당황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거미에 물렸을 때도 예전과 다르게 태연했다. 그는 거미를 바라만 봤지 튕겨 내지 않았다. 그저 고통을 인식했고 처치 방법을 생각했다. 그는 곧 담력을 탐색하고자 실험에 착수했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무서운 상황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예컨대 절벽 꼭대기에 올라서 까마득한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손은 축축해지며 발은 오들오들 떨린다.
스미스는 이와 같은 상황을 찾아 나섰다. 그는 “산에 오르는 걸 굉장히 좋아해 종종 절벽 근처도 가는데 수술 후에는 확실히 달랐다”며 “긴장은 해도 무섭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또 “본능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 낭떠러지 쪽으로 다가가 두려움을 시험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이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었다. 아무도 뇌 수술을 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위험한 상황에서 거리낌이 없어질 것이라는 정보를 말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런 성격 변화는 의학 전문가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신경과 의사이자 에모리대학 정신행동과학과 사너 판 로이 교수에게 이 변화를 털어놓자 그는 “그럴 만하다”며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수년간 편도체 절제를 연구한 그는 VICE와 인터뷰에서 “편도체 제거 수술 후에 공포나 두려움이 사라질 수도 있다”며 “비슷한 수술을 한 다른 환자들도 그랬다”고 전했다.
로이 박사는 지난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 두 명을 연구했다. 두 환자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에 과도한 공포 반응을 보였다. 우측 편도체를 절제한 후 재검사했더니 두 환자 모두 PTSD 진단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편도체가 유발하는 놀람 반응과 과도한 경계심, 심장이 두근대는 반응도 호전됐다.
로이 박사는 “편도체는 무서운 자극을 분석하고 해마에 저장된 정보를 결합해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며 “우측 편도체를 전부 제거하면 이 과정을 처리하는 데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일반적으로 공포 반응을 유발하는 감각 정보와 마주해도 공포를 더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컨대 절벽 끝자락을 따라 위태롭게 걸을 때에도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 감각 정보가 뇌에 도달하더라도 경고음을 내는 편도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드레날린이 샘솟지 않고 흥분할 일도 없다. 의사들이 중요 연결 고리 하나를 없앤 셈이다.
훨씬 더 유명한 예가 있다. 등반가로 알려진 알렉스 호놀드는 2017년 2307m에 달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엘 캐피탄 절벽을 아무런 도구 없이 맨손으로 올랐다. 신경 과학자들은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이용해 스미스가 수술 전 행했던 검사와 비슷하게 공포 반응을 유발하는 사진을 보여주며 호놀드의 뇌를 관찰했다.
호놀드의 편도체는 귀신이 나올 법한 폐가를 보거나 전쟁터 사진을 보더라도 반응이 없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그가 어떻게 안 떨고 산에 오를 수 있는지 일부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측 편도체가 없는 사람은 위험한 상황에 더 자주 처할까? 스미스와 호놀드는 경고음 역할을 하는 공포 반응이 없으니 다른 사람보다 위험한 일에 더 잘 걸려들까?
꼭 그렇진 않다. 로이 박사는 “현재까지 보고된 바에 따르면 두려움이 적다고 해서 반드시 위험한 상황을 자초하는 건 아니다”고 답했다. 그는 “대부분은 두려움을 느끼는 게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옛날에야 본능에 의지해 위험을 판단하고 적절히 대처해야 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학습이 가능해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또 “오히려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은 스트레스 상황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스미스가 이에 해당한다. 그동안 느꼈던 심각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는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을 인식하고 감각 정보를 의식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생각해낼 수 있다. 이게 그가 말하는 ‘논리로 무장한 공포’다.
스미스는 “실수하고 싶진 않다”며 “위험에 처할 만한 상황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걸 피하고자 하는 본능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술 후 훨씬 외향적이고 말이 많아졌다. 다소 불결한 것을 볼 때 느꼈던 혐오감도 줄었다. 손이 더러워져도 지금은 ‘알아서 떨어지겠지’라고 생각한다. 또 생물학적 경고등은 사라졌지만 위협을 의식적으로 구분해려다 보니 행동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스미스는 가끔 잊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만 빼면 아주 건강하다고 전했다. 여러 면에서 사는 게 쉬워졌다는 생각이다.
그는 “두려움이 사라지니 자연스레 다른 직감을 이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미스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의구심이 생겼다. 우측 편도체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할까? 돕기는커녕 도리어 문제를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비행기가 기류를 만나 흔들릴 때나 낯선 사람 앞에서 발표할 때면 구태여 공포를 유발해 스트레스 호르몬을 잔뜩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스미스처럼 이 부위를 없애는 게 더 좋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로이 박사는 “기능이 온전한 편도체와 고장 난 편도체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간질이나 PTSD 환자는 공포를 유발하는 회로가 망가진 상태라 돌발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이 두려움이 위험과 관련이 없기에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라면 아예 반응을 제거하는 게 낫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라면 두는 게 최선이다.
로이 박사는 “온전히 기능하는 편도체는… 행동의 지침이 된다”며 “건강한 사람은 필요할 때 공포 반응을 느끼는 편이 좋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편도체가 항상 과하게 반응하면 우측 편도체를 제거해 긴장에서 벗어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포는 정보가 들어왔을 때 만들어지는 화학 물질과 전기 신호가 작용하는 반사 작용이다. 이 감정이 현대에 재평가되고 있다. 대부분은 공포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어쨌거나 덕분에 위험을 인식하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사례처럼 공포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스미스는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느낀 점을 전했다.
“두려움은 생각보다 훨씬 기계적이더라고요. 생각이나 감정보단 복통이나 두통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심리 문제를 인격 결함보다 복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뇌나 감정은 사실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요. 두려움은 제 일부가 아니었어요.”